"과표·공제액에 물가 반영해야"…18년 묵은 소득세 손질론

최민경 기자
2026.09.13 06:40

[유통기한 지난 정책]<1>③

[편집자주] 정책은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현실이 빠르게 변하는 동안 정책과 제도는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시에는 합리적이었던 정책이 어떻게 현실과 괴리됐는지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물가와 임금이 오르는 동안 소득세 과세표준이 장기간 제자리에 머물면서 근로소득자의 세 부담이 사실상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과표구간과 각종 공제액을 물가에 연동하거나 주기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명목소득과 실질소득의 괴리다. 물가 상승에 따라 월급이 올라도 구매력이 그대로라면 실질소득은 늘지 않는다. 그러나 과표가 고정돼 있으면 더 높은 세율 구간에 진입해 세 부담은 커질 수 있다.

현행 소득세는 과표에 따라 6~45%의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하위 과표구간은 2023년 한 차례 조정됐지만 35% 세율이 시작되는 8800만원 기준은 2008년 이후 18년째 그대로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학과 교수는 "물가 상승에 따른 명목소득 증가가 소득 대비 세 부담 확대로 이어지면 실질 구매력이 줄어들 수 있다"며 "과표 구간과 소득공제액에 물가 변동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양가족공제 등 정액 공제도 오랫동안 조정되지 않아 가계 부담을 덜어주는 기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다.

조정 주기와 관련해 오 교수는 매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소득세법에 3~5년마다 물가 변동을 검토하도록 명시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한 번 고쳐놓고 10년, 20년 그대로 두다가 문제가 제기되면 손보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안창남 전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법 기준 전반을 물가에 연동해 매년 자동 조정하는 방안을 주장했다. 안 교수는 "과표와 공제액을 함께 조정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에 따라 늘어난 명목소득에 세금을 더 물리는 결과가 된다"며 "한 번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라 매년 자동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소득세 부담이 낮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오 교수는 "최고세율과 지방소득세를 합친 고소득자의 한계세율이 높은 데다 사회보험료 등 추가 부담도 있는 만큼 한국의 소득세 부담이 낮다고만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간접세와 사회보험료 등 준조세까지 포함한 전체적인 세 부담을 따져 국제 비교를 해야 한다"며 "정부가 확보해야 할 세수 총액에서 출발하기보다 국민에게 어느 정도의 세 부담을 지우는 것이 적정한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반도체 호황에 따라 세수가 증가한 만큼 지금이 세제 개편의 적기라는 주장도 나왔다. 안 교수는 "지금은 반도체 기업이 잘되면서 세수가 늘어 세제를 개편할 여력이 생겼다"며 "경제가 성장해 과세 기반을 넓히고 근로소득자의 세 부담은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도 과표 조정에 따른 세수 감소 우려에 대해 "법인세와 소득세가 예상보다 많이 걷히는 지금은 세수 부족을 걱정할 시점은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물가연동제의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도입 시점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봤다. 김 교수는 "한국 소득세제는 누진도 자체는 높지만 개인소득세로 걷는 세수가 적어 재분배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다"며 "과표 8800만원 기준을 상향하면 주요 세수 기반이 더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고소득층의 세율을 추가로 올리기보다 각종 공제를 정비하고 중간소득층 이하까지 세원을 넓혀 전체 소득세수를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득세 부담과 세수 비중이 적정 수준에 도달한 뒤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최근 반도체 세수 증가로 당장의 증세 압력은 줄었지만 고령화에 따른 지출 증가에 대비하려면 중장기적인 세수 확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입법이 이어진다.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월 2027년 적용 과표구간을 우선 상향한 뒤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김미애 의원도 지난 4월 과표구간별 기준금액을 매년 물가상승률에 따라 조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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