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or베이팅│② 정년이 인기 뒤에 드리운 그림자

한수진 ize 기자
2024.11.22 10:30
'정년이' 스틸 컷 / 사진=tvN '정년이' 방송화면

드라마 ‘정년이’에서 주란(우다비)이 국극단을 떠나던 날, 그는 정년이(김태리)의 얼굴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내 하나뿐인 왕자님”이라고 작별을 고한다. 직전 회차에서는 옥경(정은채)이 국극단을 떠나며 혜랑(김윤혜)에게 “잘 있어 공주님”이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옥경은 이 말을 하기 앞서 애타게 자신을 붙잡는 혜랑에게 “넌 한번도 날 완전히 가진 적 없어”라는 말을 한다. 돌아오는 혜랑의 대답은 “제발 나 버리지마”였다.

싱숭생숭한 뉘앙스가 가득했던 이 장면들은, 누가 봐도 연인의 이별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는, ‘정년이’ 대본집에서 이 장면들에 사실 ‘입을 맞춘다’라는 지문이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서 명확해졌다.

이 대본집이 공개되고 SNS는 한동안 시끄러웠다. ‘정년이’의 성공에 마냥 꽃가루를 뿌려줄 수 없는 까끌한 잔가시의 존재가 살포시 드러난 순간이기 때문이다. 바로 작품 속 퀴어베이팅(queerbaiting)의 존재다. 퀴어베이팅은 엔터테인먼트에서 동성애 로맨스를 넌지시 내비치지만 실제로 묘사하지는 않는 마케팅 기법을 말한다. 베이팅의 영어 명사는 미끼다. ‘정년이’는 만화 원작에서 퀴어 요소가 확실하게 담긴 작품이다. 아무래도 TV 드라마로 옮겨오다 보니 각색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테다.

'정년이' 스틸 컷 / 사진=tvN '정년이' 방송화면

차라리 퀴어 요소를 완벽하게 배제했으면 ‘원작과 다른’ 확장판으로써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 ‘정년이’가 택한 길은 뉘앙스는 주되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 애매한 감정선이었다. 그 애매함은 정년이와 주란이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조명하면서, 결국 주란이 남자와 결혼하는 결말을 냈다. 그러고 나서 ‘정년이’의 무삭제 대본집을 홍보하기 위해 ‘사실 대본에는 여성 캐릭터 간에 입맞춤이 있었다’는 요소를 이용했다는 점은 퀴어베이팅이다.

퀴어베이팅의 문제점은 소수자에 대한 이해나 인식 향상보다는, 그 이미지의 겉면만 이용해 오히려 스테레오타입의 퀴어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본집 관점에서 봤을 때 정년이와 입맞춤까지 한 주란이의 결혼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는 선택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 스테레오타입으로 넘어올 때 실제 성소수자들도 그런 삶의 전복을 이뤄낼 수 있다는 오인을 품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건 좌절, 혼란과 같은 극적 재미를 위한 오락적 장치가 될 수도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예 외면받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대중문화에 존재하는 게 낫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사회의 거울이기도 한 대중 작품에서 이런 식으로 계속 존재할 때, 이것은 자각도 느끼지 못한 채 통념이 되고, 당사자들에겐 현실의 비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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