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결산하는 기사들을 보면 눈에 띄게 잘하거나, 눈에 띄게 못하는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벼락성공을 했거나 하는 사람들의 공(功)에 집중하고, 범죄를 저질렀거나 잘못을 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소양이 부족했던 사람들에게서는 과(過)를 찾는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잘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했던 사람들의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다. 대중문화 특히 여러 사람들이 몇 개월에 걸쳐 혼신을 바쳐야 하는 극에서는 이러한 이들의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의미로 다양한 곳에서 ‘신스틸러(Scene Stealer)’들을 찾아서 칭찬한다. 이 자리를 빌려 꼭 그런 사람들을 추천하고 싶다.
수많은 배우들이 올해 TV와 OTT 플랫폼 작품에 출연했고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주연과 그래도 상이라도 받거나, 후보에도 거명되는 조연들은 살짝 제외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2024년 드라마와 영화를 빛냈던 ‘신스틸러’를 발굴했다.
공교롭게도 남녀 배우의 나이는 1969년생으로 동갑이다. 남자 배우, 올해의 신스틸러. 이 목록에 배우 김원해의 이름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1991년 뮤지컬 ‘철부지들’로 데뷔한 이 배우는 올해로 연기 34년 차를 맞았다. 소시민적인 캐릭터부터 극악의 캐릭터까지, 그가 들어가면 반드시 말이 되는 ‘인과관계’를 만들어냈다.
김원해는 올해 영화 ‘데드맨’에서 공문식 역, 황정민과 정해인이 주연을 맡은 ‘베테랑 2’에서 구 팀장 역을 맡았다. 공문식은 극 중 바지사장계의 약육강식을 보여주는 간악한 인물, ‘베테랑 2’에서는 극 중 해치의 존재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드라마에서는 ‘선재 업고 튀어’의 선재 아빠 류근덕, ‘플레이어 2:꾼들의 전쟁’에서는 장인규로 등장한다. ‘우연일까?’의 김복남, ‘정숙한 세일즈’의 최원봉도 있다. 마지막으로 5년 만에 출연한 ‘열혈사제 2’에서는 고독성 역할로 다시 등장한다.
드라마에서 특히 김원해의 팔색조 존재감이 빛을 발한다. 아들 바보 류근덕부터, 정의로운 검사 장인규, 앙칼진 교사 김복남에 전근대적이지만 누구보다 깊은 아내 사랑꾼 최원봉, 개과천선한 왕년의 악당 고독성 등 김원해를 만난 캐릭터들은 냄비 속 볶은 옥수수가 팝콘이 돼듯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특히 여러장면이 있지만 ‘정숙한 세일즈’에서 아내 오금희(김성령)와 한 약속을 어길 상황을 상상하는 장면에서 그는 야한 빨간 슬립을 입고 심신의 ‘욕심쟁이’에 맞춰 춤을 춘다. 대본에 이미 나와 있더라도, 대본에서의 설정보다 한참 더 나간 것 같은 그의 모습은 역할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내던지는 김원해 배우로서의 프로정신을 보여준다.
그는 새해에는 넷플릭스의 ‘트리거’와 tvN ‘이혼보험’을 통해 다시 신스틸러로서의 면모를 보일 생각이다.
여자 배우, 올해의 신스틸러로는 배우 황정민을 골랐다. 황정민은 1970년생,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남자 배우 황정민보다 한 살이 많은 연극배우 출신이다. 올해 영화 ‘공작새’의 신문숙 역과 ‘대가족’의 시주아줌마, 드라마로는 ‘가족X멜로’의 황진희, 특별출연으로 등장한 ‘굿파트너’, ‘개소리’의 양원희, ‘열혈사제 2’의 김계장 등이 있다.
1988년 연극을 시작한 그의 경력은 김원해의 그것을 넘어선다. 이미 대학로에서는 ‘황정민’이라는 이름을 말할 때 ‘남자 황정민? 여자 황정민?’이라는 말을 들게 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1997년 영화 ‘산부인과’의 단역으로 등장한 그는 드라마에서는 그보다 10년이 지난 2006년 ‘TV 문학관-달의 제단’을 통해 등장한다.
황정민의 장점은 소시민적인 연기든, 다소 기이한 역할이든 어느 역할이든 찰떡 같이 소화한다는 점이다. ‘가족X멜로’의 황진희는 황혼육아의 스트레스를 화려한 손톱 꾸미기로 풀고, ‘굿파트너’에서는 은호(표지훈)의 다정함 엄마로 등장해 이혼 사연이 가득한 드라마에 훈훈함을 전달한다.
‘개소리’에서는 해녀이자 탁구 동호회 회장이지만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인물을 연기하면서 송옥숙과 호흡을 맞춘다. ‘열혈사제 2’ 김계장은 겉으로는 남두헌(서현우)의 사주를 받는 검찰 수사계장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남두헌을 내사하고 있는 수사관이었다. 그의 서민적인 풍모와 강세를 찍은 듯 찍지 않는 연기 스타일이 그에게 많은 혐의점을 두지 않게 한다. 이렇듯 그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물 같이 스며들어 작품 자체를 풍부하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남두헌 역을 맡았던 서현우는 황정민의 준비성에 대해 “잘 모르는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기 위해 대본을 다 준비해오고, 끊임없이 나를 보며 틀리지 않았냐 체크해오곤 했다”며 열성을 대변했다. 벌써 37년 차에 접어든 연기. 이제 우리는 그의 모습을 등장할 경우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 신뢰를 갖게 됐다.
물론 김원해와 황정민 외에도 올해 작품들을 빛낸 이름은 많다. 하지만 어떠한 역할로 얼굴을 갈아 끼우더라도 티가 나지 않고 자연스레 스며드는 매력. 이들의 존재 때문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작품을 거뜬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