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이지만 너무 소중하다!” 현재 안방극장엔 배우 허준호에게 매료된 시청자들로 가득하다. SBS 금토극 ‘보물섬’(극본 이명희, 연출 진창규)에서 허준호가 펼치는 세계에 압도돼 감탄 어린 아우성들을 치는 팬들이다.
정치 비자금을 둘러싼 복수극인 ‘보물섬’에서 염장선 역을 맡은 허준호는 첫 등장부터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구중궁궐처럼 큰 기와집 처마 아래서 러닝셔츠 차림으로 멸치를 다듬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 무심한 표정으로 멸치 대가리를 따고 있지만, 사실은 국회 국정감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귀에는 무선 이어폰을 꽂고 때때로 문자로 지시사항을 전달하면서 말이다. 검찰총장에 이어 국정원장까지 지내고 강단에도 섰던 인물이 이제는 정말로 뒷방 늙은이가 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비선 실세임을 알리는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이렇듯 범상치 않게 시청자들에게 다가온 염장선은 백발과 검은 한복, 하얗지만 힘 있는 머릿결 등등 표면적인 대비는 물론 다양한 콘트라스트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라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명칭으로 정치 비자금을 모으는 염장선은 세상 무서울 게 없는 듯 본색을 드러내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 평상시에는 근엄한 무게감으로 주변을 짓누르지만, 돈 이야기만 나오면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 같은 상기된 미소로 탐욕을 감추지 않는다.
말로는 늘 상대를 깍듯하게 존대하지만, 실상은 하대하는 에너지가 역력하다. 무소불위 같은 권력을 휘둘렀던 시절이 몸에 밴 인물이고, 지금은 아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비선 실세로서 힘을 과시하는 중이라 말투에서 모든 게 느껴진다. 또한, 구부정하게 두 팔을 뒤로 휘저으며 종종거리는 걸음걸이가 영락없는 노인의 행동거지지만, 다부진 몸집은 웬만한 젊은 사람과 붙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이 보인다.
바로 허준호가 그려내는 염장선이다. 허준호는 이같은 선명한 콘트라스트로 염장선을 표현하며 안방팬들을 전율하게 만들고 있다. 역설적인 대비를 통해 염장선을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게 하면서 시청자들을 염장선의 세계에 푹 빠져들게 했다.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섬세하면서도 선굵은 허준호의 연기에 감동하다 보면 어느덧 염장선을 향한 애정까지 생기는 것이다.
허준호는 전작들에서도 숱하게 자신만의 세계로 팬들을 인도하며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조금 멀리는 ‘주몽’(2006)을 비롯해 최근작들인 ‘군주-가면의 주인’(2017), ‘이리와 안아줘’(2018), ‘60일, 지정생존자’(2019), ‘킹덤2’(2020), ‘왜 오수재인가’(2022), ‘사냥개들’(2023) 등까지 선역이든 악역이든 특유의 존재감으로 시청자들을 캐릭터에 이입하게 했다. 또한 스크린에서도 ‘실미도’(2003)부터 ‘국가부도의 날’(2018), 그리고 ‘모가디슈’(2021)에 이르기까지 그가 보여주는 인물에 녹아들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런 허준호가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 중 제일 나쁜 캐릭터”라며 펼치는 악역 연기다 보니 염장선은 더욱 볼 만하다. 모순적인 염장선의 콘트라스트들로 그의 지난 세월과 깊이를 함축해 보이는 허준호는 그렇게 또 하나의 인생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염장선이 ‘보물섬’의 최대 빌런다운 모습으로 폭주를 시작해 팬들의 환호성은 더욱 높아졌다.
복수극의 개연성은 악의 근간에서 출발하는데, 염장선이 ‘보물섬’ 악의 축으로서 그 본분에 충실하니 드라마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게 당연했다. 허준호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팬들로 하여금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 염장선의 악행에 치를 떨게 하면서 주인공 서동주(박형식)의 복수를 더욱 지지하게 만들었다. 가파른 상승세로 두자릿수 시청률을 돌파한 ‘보물섬’은 염장선의 폭주에 힘입어 인기 드라이브에 더욱 가속도를 붙일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총 16부작으로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은 ‘보물섬’이 얼마나 더 고공행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면서 허준호의 활약에 더욱 기대를 걸게 된다. 염장선의 욕망과 포악함에 기겁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 켠에서 염장선을 소중하게 여기게 만드는 허준호의 열연을 관전할 기대에 마음이 들뜨는 팬들이 한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