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JENNIE)의 첫 솔로곡 가사처럼 ‘빛이 나는 솔로’라는 말은 정확했다. 지금 제니의 빛은 사방을 밝히는 하나의 태양처럼 스스로 타오르는 광휘에 가깝다. 그는 이제 K팝이라는 세계에서 독자적인 공전 궤도를 그리는 존재다.
지난해 제니는 블랙핑크 멤버 중 가장 먼저 홀로서기에 나섰다. (정확히는 2023년 12월 24일이지만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에 나선 건 2024년부터다.) 그는 YG엔터테인먼트와의 재계약에서 그룹 활동은 유지하되, 개인 활동은 자신이 설립한 1인 기획사 오드 아틀리에(ODD ATELIER)로 독립해 운영하기로 했다.
제니의 솔로 첫걸음이 화려한 무대나 글로벌 음반이 아닌 예능 고정 프로그램 ‘아파트404’였다는 점은 상징적이었다. 대개 제니 정도 체급의 K팝 스타는 예능을 후순위로 둔다. 그러나 제니는 예능마저도 자신의 무대처럼 활용할 줄 알았다. 대중은 익숙했던 무대 위 센 모습이 아닌 ‘젠탐정’, ‘젠아치’라 불리는 재치 있고 다정한 제니를 마주했다. 이후 예능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My Name is Gabriel)’에 출연해 또 한 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지난 7일 토크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제니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 안의 그림자를 꺼내놓았다. “데뷔하고는 그저 달리기만 했다”며 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지나간 시간을 돌아봤고, “어느 날 에너지가 제로가 되더라”고 고백했다. 모든 걸 가진 듯 보였던 슈퍼스타의 목소리에서 삶의 무게가 전해졌다. 그 고요한 고백은 대중에게 제니라는 이름의 또 다른 결을 들려줬다.
제니의 빛은 단지 이미지 변신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장 강렬한 순간은 여전히 음악 안에 있다. 2023년 10월 스페셜 싱글로 발표한 ‘You & Me’는 그 상징적인 예다. 월드 투어 ‘BORN PINK’에서 미리 무대를 공개한 이 곡은 정식 발매 전부터 글로벌 팬들 사이에서 발매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보름달을 배경으로, 실루엣으로 춤을 추던 그의 퍼포먼스는 곡이 아니라 장면 그 자체로 기억됐다. 이 곡을 위한 그 어떤 프로모션도 없었다. 제니는 그저 노래 하나로 각종 국내외 차트를 휩쓸었고, 미국 빌보드 차트 ‘글로벌 200’ 7위, ‘글로벌(미국 제외)’ 1위라는 기록을 남겼다.
여기서 중요한 건 ‘You & Me’가 히트했기 때문이 아니라 힘을 뺀 채 던진 결과가 이 정도였다는 점이다. 마치 지금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듯한 여백이 제니의 체급을 드러냈다. 그는 K팝 시스템의 전형적인 성공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고도의 기획, 대대적 홍보, 최고의 타이밍 없이도 정상에 오르는 드문 존재다.
지난 3월 발표한 첫 정규 앨범 ‘Ruby’는 상징을 넘어선 결정체였다. 오랜 시간 쌓아온 정체성과 감각, 내면의 문장이 단단히 응집된 한 편의 자화상이었다. 타이틀 곡 ‘like JENNIE’는 그것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냈다. “Special edition and your AI couldn’t copy.” 복제품이 불가능한 존재, 그것이 제니가 말하는 자기 자신이다. 제니는 자작 가사로 구성된 이 곡에서 타인의 시선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대체 불가능한 존재’임을 선언한다. 뮤직비디오 마지막, 제니는 카피바라로 변신한다. 익살스러운 설정 같지만 사실상 모든 가식과 기대를 벗어던지고 가장 순수한 존재로 회귀하는 포고다. ‘like JENNIE’는 단지 그처럼 되고 싶다는 팬들의 구호가 아닌 그 누구도 될 수 없는 제니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문장이다.
이 노래를 비롯해 ‘Ruby’에 수록된 2곡(‘Handlebars(feat. Dua Lipa)’, ‘ExtraL(feat. Doechii)’)까지 더해 총 3곡을 미국 빌보드 메인 음원 차트 ‘핫 100’에 올려놓았다. K팝 여성 솔로 아티스트 최초이자 최고 기록이었다. 메인 음반 차트 ‘빌보드 200’에도 이름을 올려 8주간 차트인 중이다.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에서도 올해 여자 솔로 아티스트 최초로 ‘TOP100’ 일간 차트 정상을 찍었다.
지난 4월 미국 최대 규모 음악 페스티벌 코첼라의 문마저 시원하게 열어젖혔다. K팝 여성 솔로 아티스트 최초로 코첼라의 아웃도어 시어터 스테이지에 선 제니는, 말 그대로 무대를 삼켰다. 13곡의 셋리스트, 전환 없는 솔로 무대, 숨 쉴 틈 없는 안무 속에서도 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관객들의 떼창, 외신의 찬사, SNS 실시간 트렌딩 1위.
그리고 그는 지난 5일 멧 갈라에도 참석해 아이코닉한 룩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클래식과 파격의 경계를 우아하게 비틀었다. 제니는 등장과 동시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하나의 아이콘으로써 ‘제니 스타일’이라는 독립된 장르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했다. 한때 아이돌 그룹의 일부였던 그는 이제 혼자서도 세계의 중심에 선다.
많은 아이돌이 그룹이라는 틀 안에서 출발한다. 일부는 예능으로, 일부는 연기로 자신의 존재를 확장해 나간다. 하지만 제니는 확장이 아니라 전환했다. 블랙핑크의 한 조각이 아니라 완결된 하나의 서사로 섰다. 그는 자기 이름만으로 티켓을 팔고, 자기 곡 하나로 세계 차트를 흔들고, SNS 게시물 하나로 패션계를 좌지우지한다. 그 빛은 혼자일 때 더욱 강하다. 제니는 지금 K팝 최고 '빛이 나는 솔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