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와 마약의 낯선 병치, 정숙의 짜릿한 균열?

한수진 기자
2025.10.13 14:53
'은수 좋은 날' 이영애 / 사진=KBS2

이영애가 주인공 강은수를 연기하는 KBS2 토일 드라마 '은수 좋은 날'은 불행의 수레바퀴에 갇힌 한 여자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풍족하진 않아도 소박하고 단정한 일상을 꾸려가던 은수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암 발병으로 하루아침에 삶의 기반을 잃는다. 절박한 순간 우연히 손에 들어온 마약이 마치 구원의 끈처럼 다가오지만, 그것은 곧 파멸의 고리가 되어 은수를 옭아맨다.

은수는 남편과 딸을 위해 마약 판매에 손을 댔지만,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들수록 정작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들을 등한시한다. 그렇게 평범했던 중년 여성은 어느새 절망을 거래하는 여인이 되어 있다. 동업자 이경(김영광)과 시시때때로 다투며 "그만두겠다"고 으스대 보지만, 그 결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삶이 무너진 자리에 남은 것은 끝없는 늪지뿐이다. 결국 은수는 손대지 말아야 했을 금단의 세계에서 또 다른 절망을 마주한다.

대한민국에서 '마약'과 '배우 이영애'라는 단어의 병치는 참으로 낯선 조합이다. 붓으로 그린 듯 정갈한 이목구비, 정돈된 말투와 품위 있는 태도까지.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상징되는 이영애의 이미지에서 돈 한 푼에 흔들리고 치욕스러운 협박에 시달리는 여성의 모습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은수 좋은 날' 이영애 / 사진=KBS2

그러나 '은수 좋은 날'의 은수는 바로 그 낯섦에서부터 이야기가 흥미롭게 시작된다. 단정하던 얼굴이 불안으로 요동치고, 고운 손끝에 피가 맺히며 고요하던 목소리는 점차 거칠어진다. 시청자는 이영애라는 이름이 지닌 단정함이 균열하는 순간을 통해 한 인간이 절망의 벼랑 끝에서 얼마나 처절하게 변모하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은수는 정의나 복수 같은 서사의 틀 밖에서 움직이는 인물이다. 선과 악의 구분보다 생존 본능에 더 가까운, 가장 인간적인 밑바닥의 감정을 드러내는 존재다. 이영애는 그런 은수를 통해 자신이 쌓아온 이미지를 전복한다. 그 변화는 도전이라기보다 필연에 가깝다. 늘 완벽하고 단정하던 배우가 결함을 품은 인간을 연기하며 스스로의 세계를 더 깊고 넓게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이영애의 얼굴엔 더 이상 우아함을 억지로 쥐려는 판타지는 없다. 대신 살에 닿는 현실감,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려는 생의 끈질김이 묻어난다. 때문에 이영애는 이 작품에서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닌 '악착'이나 '억척'과 더 어울리는 인간적인 얼굴로 남는다. 숨을 고르며 악을 쓰고, 때로는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 낯선 얼굴에서 시청자는 오히려 오래된 신뢰를 다시 느낀다. 삶의 추함을 연기하면서도 그 안에 품위를 잃지 않는 단단함. 그것이 지금의 이영애가 증명해 보이는 새로운 우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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