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가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잭슨 목사의 가족은 1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그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우리 아버지는 가족뿐 아니라 전 세계 억압받는 이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 소외된 이들을 위한 섬기는 지도자였다"고 밝혔다.
1941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태어난 잭슨 목사는 남부에서 인종차별이 합법이던 시기에 성장했다. 그는 일리노이대에 풋볼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인종차별을 경험한 뒤 흑인 대학으로 옮겼고 인종분리정책을 거부하며 백인 전용 도서관에 들어가려다 체포되기도 했다.
이후 시카고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며 1968년 침례교 목사로 안수받았고 미국 민권 운동 지도자였던 마틴 루서 킹 목사를 가까이서 보좌했다. 같은 해 테네시주 멤피스의 한 모텔에서 킹 목사가 암살됐을 때 그는 킹 목사의 아래층에 있었다.
잭슨 목사는 킹 목사가 이끌던 남부 기독교 지도자 회의(SCLC)와 결별하고 1970년대 초 자신의 민권 단체인 '오퍼레이션 푸시'를 설립했다. 1984년에는 여성·성소수자 권리까지 포괄한 '무지개 연대'를 창립해 미국 주요 시민 운동의 중심에 섰다.
뛰어난 웅변술을 지닌 그는 1984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으나 유대인을 경멸하는 '하이미'라는 표현을 써 논란을 빚고 3위에 그쳤다. 1988년 경선에서는 더 세련되고 주류적인 이미지로 변신해 2위를 차지했다.
잭슨 목사는 1980~1990년대 시리아, 쿠바, 이라크 등지에서 억류된 미국인의 석방을 중재하면서 외교 사절 역할도 수행했다. 1984년 시리아가 미 해군 조종사 로버트 굿맨을 석방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그를 초청해 감사를 표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는 아프리카 특사로 활동했고 2000년 미국 최고의 민간인 훈장인 자유 훈장을 받았다.
그는 2017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각종 활동을 이어갔다.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촉발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운동에도 참여했다.
잭슨 목사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그는 2018년과 1986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