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의 작품은 특유의 유머코드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문제는 자칫 잘못하면 오글거리거나 어색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김우빈은 달랐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에 어느덧 세 번째로 출연하게 된 김우빈은 특유의 유머코드를 누구보다도 잘 살려내며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 이루어질지니'(연출 이병헌·안길호, 극본 김은숙)는 모종의 이유로 공백기를 뚫고 천여 년 만에 인간세계로 컴백한 경력 단절 램프의 정령 지니가, 할머니의 룰(Rule)과 자신의 루틴(Routine)으로 주입식 인생살이 중인 감정결여 인간 가영을 만나 세 가지 소원을 두고 벌이는 스트레스 제로, 아는 맛 생사여탈 로맨틱 코미디다.
폭발과 전의 상실을 오락가락하는 램프의 정령이자 사탄 지니 역을 맡은 김우빈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김우빈은 '다 이루어질지니'와 대본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시작으로 캐릭터와 연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동안 함께했던 사람들과 하는 작품이라 의미가 있었고,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특히 대본에서는 안 좋은 부분이 없었어요. 김은숙 작가님의 유머코드를 좋아해서 재미있게 연기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지니의 첫인상도 새로워서 영화에서 봤던 지니와 또 다른 지니의 모습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작가님이 던지는 질문 속에서 호흡하고 생각하지 못해봤던 인간의 선함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았어요. 그동안 나왔던 사이코패스와는 다른 가영을 통해서 인간의 선함을 이야기하는 구조도 좋았어요."
인간을 타락시키려는 지니를 맡은 김우빈은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우빈은 그 흐름의 중간을 찾는 게 숙제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를 헤어스타일이나 의상 등 외적인 측면으로도 풀어낸 방식을 설명했다.
"지니가 여러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흐름의 중간을 찾는게 숙제였고, 촬영 내내 즐거운 숙제를 푸는 느낌이었어요. 작가님이 쓰신 특유의 코미디 신을 날릴 수는 없어서 최대한 잘 살리고 싶기도 했어요. 긴 머리는 대본에 쓰여 있었어요. 천 년 전의 지니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천년 뒤의 지니는 보기에는 불편하지만 스스로는 편안해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다 이루어질지니'는 공개 이후 3일 만에 400만 시청수를 기록하며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5위에 올랐다. 또한 공개 후 약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극명한 호불호 반응이 갈리고 있다.
"호불호 반응은 모든 작품이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만큼 담고 있는 이야기가 많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보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드라마를 봐주셨다는 거니까 정말 감사하고 모든 의견을 귀담아듣고 있어요."
특히 지니와 가영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지나치게 생략되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다만, 김우빈은 지니와 가영이 모두 이해된다는 생각을 밝혔다.
"사랑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왜 좋아?'라고 물으면 자기만 아는 포인트가 있기도 하고요. 저는 지니와 가영이 모두 그 정도면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이해가 됐어요. 그 뒤에 절절해지는 건 시간의 경과에서 생략된 부분들이 있다는 가정하에 연기를 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앞서 말한 것처럼 김우빈은 이번 작품을 통해 김은숙 작가의 작품에 세 번째로 출연을 하게 됐다. 특히 그 안에서 비중이 조금씩 늘어났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매번 제안을 주시는 걸 보면 분량보다는 저와 작업했던 시간을 좋아하셨던 것 같아 감사해요. 그만큼 믿어주신다는 거니까요. 영광이고 감사해서 그만큼 잘해내고 싶었어요. 이번 대본도 정말 좋았고 그만큼 소중해서 한 장면 한 장면 아끼는 마음으로 찍었어요."
오랜 호흡은 작품 속 김우빈이 '상속자들'의 최영도나 '더 글로리'의 문동은, '파리의 연인' 박신양 패러디하는 장면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자칫 잘못하면 이도 저도 못한 장면이 될 수 있었지만, 김우빈은 완벽하게 패러디하며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김은숙 작가님이니까 쓸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하고 반가웠어요. 잘 살리고 싶었고요. 제가 '상속자들' 때 입던 교복을 가지고 있는데 몸이 커져서 명찰이랑 단추만 가져오고 옷도 복각해서 만들었어요. 그러다 수정본에서 문동은 장면이 없어졌더라고요. 작가님께 여쭤보니 '네가 싫어할 것 같아서'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대사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드려 살려냈어요."
이런 오글거리는 장면은 김우빈에게 큰 난관이 아니었다. 오히려 생소한 아랍어 대사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
"아랍어가 큰 도전이었어요. 익숙한 언어가 아니라 돌아서면 까먹더라고요. 연기까지 더해야 하니까 어려웠어요. 한 마디를 천 번 정도 들으니까 외워지더라고요. 억울하게 편집된 걸 포함하면 제 대본에 아랍어 대사가 52마디가 있는데 5만 2,000번 들어서 결국 해냈어요.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전이었던 아랍어를 해내서 뿌듯해요."
'함부로 애틋하게' 이후 오랜만에 한 작품에서 만난 수지와의 호흡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가영의 특성상 수지는 대부분 무표정인 채로 연기를 해야 했는데, 김우빈은 그 안에 디테일이 있다고 설명했다.
"무표정 같아 보이지만 무표정이 아니에요. 미묘하고 디테일한 연기가 있어요. 그런 리액션을 보면서 충분히 가영이로 바라볼 수 있었고, 어려움은 없었어요."
다만, 아쉬운 점은 촬영 중간 감독의 교체가 있었다는 점이다. 영화 '스물'을 통해 김우빈과 호흡을 맞췄떤 이병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지만 중도 하차했고, 이후 안길호 감독이 메가폰을 넘겨 받았다.
"드라마가 시간 순서대로 찍지를 않다 보니 언제부터 바뀌었는지 말하기는 어려워요. 현장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고, 그런 것에 익숙하다 보니 감독님의 교체에도 큰 불편함은 없었어요. 이병헌 감독님과 '스물'을 찍을 때 너무 좋았는데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요."
김은숙 작가는 물론 중간에 하차한 이병헌 감독, 중간에 투입된 안길호 감독은 작품의 홍보 활동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었다. 제작 발표회에서도 이례적으로 감독이 참석하지 않았다. 수지 역시 현재 차기작을 촬영 중인 탓에 스케줄 조절이 실패했고, 인터뷰에 나서지 못했다. 결국 작품 홍보 과정에서 많은 것을 김우빈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김우빈은 "제가 작품을 안 해서 그런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 안에는 '다 이루어질지니'에 대한 깊은 애정도 자리하고 있었다.
"저는 작품을 안하고 있어서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다른 분들은 바빠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게 된 거예요.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대본이고 그 다음은 캐릭터, 메시지를 가졌다면 그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고려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대본, 캐릭터, 메시지,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가 좋아서 깊은 애정이 있는 것 같아요."
김우빈의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대신 예능 '콩콩팡팡'이 오는 17일 공개를 앞두고 있다. 다음 목표를 묻는 말에 김우빈은 암 투병 후 달라진 목표 의식을 털어놓으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겠다고 강조했다.
"공백기를 가진 이후부터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아요. 그냥 하루하루 저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잘 살아가는 게 목표예요. 큰 목표라면 건강한 것 말고는 없어요. 예전에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았다면, 이제는 오늘을 위해 오늘을 사는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