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3', 이거 '이혼 숙려 캠프' 백악관 버전인가요?

영림(칼럼니스트) 기자
2025.11.19 10:19
'외교관' 시즌 3,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외교관(The Diplomat)’ 시즌3는 겉으로만 보면 전형적인 정치·외교 스릴러다. 차량 폭탄 테러에 정권 교체, 핵잠수함, 국제질서 위기까지 이 장르에서 나올 법한 요소를 한껏 때려 넣었다. 하지만 막상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문장은 이거다.

“뭐야? 이혼 숙려 캠프 백악관 버전이잖아?”

전 세계를 혼돈에 빠뜨릴 수 있는 민감한 핵무기 이슈는 정작 극 안에서는 들러리 취급이다. 진짜 스릴은 백악관이나 대사관 로비가 아니라 침실, 소파, 복도 끝에서 터진다. 이번 시즌의 주요 인물 네 명의 캐릭터는 서로를 질투하고 감정을 마음껏 소비하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흥정한다. 저 자들에게 국제 외교를 맡겨도 되나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케이트·할 와일러 부부, 그레이스·토드 펜 부부. 이들은 모두 미국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는 정치 부부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이미 각자 자기 인생의 일부를 과감하게 포기해 본 사람이라는 것. 핵 버튼보다 먼저 눌려 있는 것이 ‘커리어 포기 버튼’이다.

케이트(케리 러셀)와 할(루퍼스 스웰)의 결혼은 시즌3에 이르면 거의 껍데기만 남아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고, 서로가 숙련된 거짓말쟁이임을 전제로 깔고 관계를 이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은 서로를 공개적으로 버리지 못한다. 상대의 재능을 정확히 알고, 어디에서 어떤 말을 해야 판을 뒤집을 수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외교관' 시잔3, 사진제공=넷플릭스

이 철저한 손익 계산이라는 토대 위에서 굴러가는 부부 관계는 위태로운 듯 단단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머릿속은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차라리 미국과 영국의 알력 다툼 같은 것이 이들에겐 더 해결하기 쉬운 문제처럼 보인다.

여기에 시즌3에는 그레이스 펜(앨리슨 제니) 대통령, 토드 펜(브래들리 휘트퍼드) 퍼스트 젠틀맨(First Gentleman)이 등장하며 더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정작 주목해야 할 사람은 세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토드다.

그는 애초에 정치인이 아니었다. 생물학자이자 대학 교수였다.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살아야 할 그의 인생이, 대통령이 된 아내의 정치 커리어를 위해 통째로 꺾였다. 토드 역시 스스로를 “퍼스트 레이디”라고 부르기를 자조한다. 이 부부의 관계는 동반 성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전문성을 저당 잡힌 불공정 계약에 가깝다.

이때 그레이스와 발을 맞추는 매력적인 부통령이 등장한다. 할 와일러다. 둘은 서로의 정치 언어를 공유하고, 세계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주요 결정을 함께 논의한다. “그냥 조용히 세계 정복할 궁리나 하는 사이”라는 극 중 대사는, 할과 그레이스가 어떤 관계인지를 정확히 요약한다.

'외교관' 시즌3, 사진제공=넷플릭스

하지만 토드의 눈에는 몇 가지 감정이 겹친다. 자신이 포기한 커리어의 연장선에 서 있을 사람에 대한 질투, ‘내가 접은 인생의 크기에 비해 지금 받고 있는 대우가 과연 등가 교환이 맞는가’에 대한 회계.

이렇게 보니 이들은 분명한 이혼 숙려 캠프의 거주자다. 이미 이 두 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서로의 비수를 꽂을지” 각을 재기 바쁘다.

이런 상황이니 시청자는 핵무기고 뭐고, 러시아가 어쨌고, 영국이 뭘 했는지가 점점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팝콘이나 가져와 이 부부 사이가 어떤 파국을 맞을지 지켜볼 뿐이다.

한참을 팝콘 씹으며 남의 결혼을 구경하다가도, 어느 순간 손이 멈칫한다. 저들의 싸움이 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우리 쪽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문득 깨닫는 순간이다.

'외교관' 시즌3, 사진제공=넷플릭스

누군가는 배우자의 직장 때문에 도시를 옮기고, 아이 때문에 커리어를 접하고, 부모를 돌보느라 연애와 결혼을 미룬다. 저들 같은 정치 엘리트가 아니어도, 우리는 각자 작은 핵 버튼 대신 카드값, 전세 계약서, 육아 카톡방을 사이에 두고 매일 집 안 외교를 펼친다.

‘외교관’ 시즌3는 매번 당장이라도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처럼 굴어놓고는, 끝내 그런 이슈들을 모두 들러리로 만든다. 대신 네 명의 정치 부부를 가운데 세워 이렇게 묻는다.

“혹시 당신도 누군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기 인생의 일부를 떼어 주고 있는 건 아니냐”고.

이 질문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불가에서 말하는 화두(話頭)에 가깝다. 스릴러로 스트레스를 풀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려 했다가, 의도하지 않은 숙제를 떠안은 셈이다.

시청자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이 화두까지 도달하게 만든 것. 이것만으로도 이 시리즈는 충분히 영악하고 교활하다.

영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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