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릿적 동시상영관의 에로영화도 아니고, 이런 적나라한 대사들을 2025년의 영화관에서 듣게 될 줄 몰랐다. 그러나 대사는 적나라하지만 영화는 음험하지 않다. 오히려 유쾌하고 밝다. 급기야 ‘동백이’ 공효진의 입에서 “그래, 나 XXXX 하고 싶어!”라는 대사가 나오는 순간, 극중 캐릭터는 물론이고 보는 관객들 또한 뭔가 와장창 깨부수는 쾌감마저 느껴진다. 하정우의 네 번째 연출작인 ‘윗집 사람들’이다.
아파트 아랫집에 사는 부부 정아(공효진)와 현수(김동욱)는 매일 밤 윗집에서 들려오는 층간소음에 괴로워한다. 그냥 생활소음이라면 얼마든지 항의를 할 텐데, 하필 이 소음은 활발한 부부 관계를 하면서 나는 ‘섹’다른 소리. 공적인 자리는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도 부부 간 성관계를 화제에 올리지 않는 점잖은(?) 나라에서 그 때문에 항의를 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런 와중 정아는 문제의 윗집 부부를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6개월 전 인테리어 공사의 소음을 묵묵히 참아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라나.
층간소음으로 괴로워하던 현수는 초대를 취소하라 으름장을 놓지만, 윗집 부부가 못내 궁금한 정아는 그를 어르고 달랜다. 사실 정아는 각방 생활을 하며 섹스 리스인 자신들과 달리 매일 밤 활발한 윗집 부부가 은근히 부럽고 호기심이 있는 상태. 그렇게 상황이 아슬아슬한 정아와 현수의 집에 윗집 부부 김선생(하정우)와 수경(이하늬)이 온다. 그런데 이 부부, 요상하다 못해 괴이쩍다. 아크로바틱하다 못해 뭔가 뚝뚝 흐를 것 같은 요가 시범을 보이는가 하면, 가져온 음식의 마무리 터치를 하는 손놀림은 화려한데 뭔가 민망하다. 무엇보다 그들 대화의 주제! 노골적인 수위의 대화는 어느덧 끝을 모를 만큼 아득해진다.
‘윗집 사람들’은 러닝타임 107분 거의 대부분이 정아와 현수의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로 구성된다. 한정된 공간은 물론, 등장 캐릭터도 99% 아랫집과 윗집 부부 네 사람. 단조로울 것 같은 이 구성을 한 치의 여백 없이 꽉꽉 채우는 건 네 사람의 대사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개봉하는 한국 영화에서 한국어 전체 자막을 넣었을 정도. 연극적인 공간에서 문어체로 표현된 대사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데, 그 대사들을 한 톨도 놓치지 않도록 전달하겠다는 뚜렷한 의지가 엿보인다. 하정우의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도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소동과 대사의 말맛이 어우러져 웃음을 자아냈고, 올봄 개봉한 세 번째 연출작 ‘로비’ 또한 쉴 틈 없는 핑퐁 같은 대사로 혼을 뺐으니 ‘말맛 코미디’는 감독 하정우의 전매특허라고 볼 수 있는데, ‘윗집 사람들’은 그 말맛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집중이 오롯이 배우들에게 쏠리는 만큼 배우 한 명 한 명의 존재감도 확실하다. 특히 아랫집 아내 정아를 맡은 공효진은 독특한 문어체 대사를 현실감 있게 살려줄 배우로 낙점했다는 하정우 감독의 바람을 100% 이뤄낸다. ‘러브 픽션’에서 하정우와 커플로 호흡을 맞췄던 과거를 인용한 ‘배우 개그’도 재미나다. 역시 하정우와 ‘국가대표’ ‘신과함께’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김동욱은 짜증과 예민을 넘나들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신스틸러로 무게 축을 잡는다. 하정우와 처음 호흡을 맞추지만 그간 여러 코믹 연기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이하늬는 정중하면서도 도발적인 모습으로 분위기를 맞춘다. 그리고 연출과 함께 김선생을 맡은 하정우는 오히려 살짝 중심에서 빠지는 듯 하지만 도리어 ‘피카츄’처럼 시선을 집중시킨다.
19금을 넘어 29금, 아니 39금의 대사들이 범람하지만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윗집 사람들’은 관계(sex)가 아닌 관계(relationship)에 관한 이야기임을 분명히 한다. 관계가 없던 정아와 현수가 부부간 관계의 본질을 건드리며 서로를 똑바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 그렇기에 김선생과 수경은 어떻게 보면 실제 인물이 아닌 이들의 숨겨진 욕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커플 간의 숨겨진 욕망을 건드리고 수면 위로 분출시킨다는 점에서 2004년작 ‘누구나 비밀은 없다’가 떠오르기도 하고.
스페인 영화 ‘센티멘탈’이 원작으로, 하정우 특유의 터치로 완성된 ‘윗집 사람들’은 ‘동거인’ ‘미지와의 조우’ ‘나이로비 사파리 클럽’ ‘강강수월래’ ‘매치 포인트’의 5개의 챕터로 이어지며 관객의 마음도 벌거벗기고자 한다. 다만 진입장벽 또한 세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건 둘째 치고 자유분방한 성담론의 대사가 도처에 널려 있기에 커플이더라도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권하긴 애매하다. 문자 그대로 귀가 터질 것 같은 대사의 향연에 지레 질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피카츄와 최불암의 조화처럼 상상한 적 없는 기이한 조화를 보는 열린 마음이 필수. ‘윗집 사람들’은 12월 3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