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플로이드로 들려준 피프티 피프티의 입장 [K-POP 리포트]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기자
2026.02.12 12:00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가 피프티 피프티에 의해 커버된 사례를 통해 세대와 장르 간 경계를 허무는 음악적 재해석의 의미를 다루고 있다. 1975년 발매된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이 지난해 50주년을 맞아 피프티 피프티에 의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었으며, 이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음악적 연결고리로서의 가치를 보여준다.
?사진=피프티 피프티 ' 'Wish You Were Here' 커버 영상 캡처?

우린 우리도 모르게 많은 것들에 선을 그으며 산다. 음악에선 장르가 그럴 것이다. 더 알기 쉽게 그 음악을 설명, 표현하기 위한 이름표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모르는 사이 장르와 장르 간 경계가 생기고 심지어 차별, 계급이 돋아나는 데서 불거진다. 흔히 장르의 낯가림은 세대 사이에도 일어나는 바, 클래식 정도를 빼면 지난 음악은 낡은 것이 되고 요즘 음악은 '힙'하고 '쿨'한 것이 되는 게 보편적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가장 최근에 쓰인 것이 늘 더 정확하다는 생각, 나중에 쓰인 것이 전에 쓰인 것보다 더 개선된 것이라는 생각, 모든 변화는 곧 진보라는 생각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

그러니까 최신일수록 더 좋은 것도, 지난 것이라고 다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게 저 말의 핵심이다. 대중음악의 경우, 혹여 요즘 세대가 '옛 것은 낡은 것'이라는 부정적 편견에 사로잡혀 옛날 음악을 '열등한' 무엇으로 치부해 버린다고 할 때 그 세대는 많은 걸 놓치게 되리라는 얘기다. 무릇 예술이란 분야를 묻지 않고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반짝반짝 새것으로 다가가는 법. 감상해 본 사람은 헌 것으로 치부할 수 있어도, 아직 접해보지 않은 사람까지 헌 것이라며 내치기에 지나간 예술 작품들엔 좋은 게 너무 많다.

어느 밤 유튜브를 항해하다 익숙한 기타 코드에 나도 모르게 화면을 고정시켰다.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였다. 흥미롭게도 노래는 오리지널이 아닌 알앤비 풍으로 커버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내 눈을 사로잡은 영상엔 MZ세대로 보이는 여성들의 뒷모습부터 천천히 흘러들었다. 케이팝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였다. 처음엔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피프티 피프티가 핑크 플로이드를 커버할 개연성은 상식 선에서도 극히 낮았다. 그렇다고 두 팀이 음악적 공통분모를 가진 것도 아닐뿐더러 특별한 인연을 맺은 일도 없는 것으로 안다.(그나마 문샤넬이 자신의 음악 감수성에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로 핑크 플로이드를 언급하긴 했다.) 그래서 처음엔 노래가 데뷔 후 맞은 해(50주년)를 거듭 되뇌는 듯한 팀명(피프티 피프티는 반반 확률 '50-50'을 뜻한다) 자체가 농담처럼 와닿기도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이 생각도 편견일 수 있겠구나. 편견이 맞았다. 한강을 배경으로 찍은 피프티 피프티의 'Wish You Were Here' 영상은 단순한 커버가 아니라 핑크 플로이드가 자신들의 SNS 계정에도 공유한 '공식' 커버였다.

?사진=피프티 피프티 ''Wish You Were Here' 커버 영상 캡처

'Wish You Were Here'는 1975년 핑크 플로이드가 발표한 동명 앨범의 타이틀 곡이다. 발매한 그 해에만 600만 장 이상을 팔아 내며 영국과 미국 차트 정상에 똑같이 오른 앨범 'Wish You Were Here'는 걸작이라 일컫는 'The Dark Side of the Moon'과 함께 핑크 플로이드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종종 회자된다. 그 앨범이 지난해 50주년을 맞은 것이고, 피프티 피프티가 무려 타이틀 곡을 자신들 식으로 해석해 헌정한 것이다. 현대인의 고립과 소외, 치열한 자유와 안락한 구속 사이 갈등을 다룬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다시 한번 '왜' 피프티 피프티가 이 곡을, 이 앨범을 향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CD장에 잠들어 있던 해당 앨범을 꺼냈더니 거기엔 존재와 부재를 상징하는 유명한 '악수' 이미지가 액자처럼 걸려 있었다. 한 사람은 멀쩡한 모습으로, 또 한 사람은 불에 타고 있는 형상으로. 사진은 마치 이승과 저승이 인사를 나누는 듯 보였다. 이 사진을 연출한 힙노시스의 창립자 스톰 소거슨의 말을 들어보자.

"악수란 당신이 누군가와 얼마나 친한지를 알려주는 총체적 관념의 상징이라 할 수 있지요. 손을 맞잡고 흔듦으로써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얼만큼 가깝게 결합되어 있는 사이인지를 서로에게 말하려 애쓰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그 둘이 실제론 멀리 떨어져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지요."

소거슨의 말에 나는 무릎을 쳤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그 둘이 실제론 멀리 떨어져 있다"는 얘기는 음악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생리를 은유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Wish You Were Here'는 곡을 넘어 앨범 차원에서, 아픈 리뉴얼을 겪었고 지금도 지난한 소송을 이어가고 있는 피프티 피프티와 그들의 소속사인 어트랙트의 입장, 심정을 나타내는 건 아닐까. 내 생각은 여기까지 갔다. 이 생각이 터무니없지 않은 이유는 또 다른 수록곡 'Have a Cigar'가 "음악 산업의 바보 같은 본성에 대한 풍자적인 조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1975년 앨범 작업 당시 스튜디오에 초췌한 몰골로 나타난 핑크 플로이드 원년 멤버인 시드 배럿을 추억하는 26분짜리 대곡 'Shine on You Crazy Diamond'와 'Wish You Were Here'가 인간의 조건을 다룬 'Welcome to the Machine'의 함의로서 번져나가는 풍경 역시 아티스트와 기획사의 무거운 심정을 반영하듯 느껴졌다.

데이비드 길모어의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한 스산한 원곡 분위기를 케이팝 식 알앤비 화음과 웅장한 현악, 탁한 일렉트릭 기타 솔로에 적셔 빚어낸 2026년의 'Wish You Were Here'. 어트랙트와 피프티 피프티가 왜, 어떻게 저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지 배경은 알 수 없지만, 되레 그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짐작해 볼 수 있는 원곡과 커버곡 사이의 서사는 참신하다. 세대와 장르라는 구차한 경계를 허물어 노래가 지닌 순수함 하나로 자신들의 과거와 입장, 다가올 미래를 모두 보여준다. 영리한 리메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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