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광고 못하나 싶어"…'휴민트' 박해준, 철철 흐르는 인간미 [인터뷰]

한수진 ize 기자
2026.02.17 11:35
배우 박해준이 영화 '휴민트'에서 북한 총영사 황치성 역을 맡아 복합적인 성격의 악역을 연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류승완 감독과의 긴 대화를 통해 황치성의 방향성을 세밀하게 조율하며, 작품과 감독, 대본이 달라질 때마다 인물이 스스로 다른 힘을 갖게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해준은 양관식과 황치성을 대비하지 않고 인물이 처한 조건과 선택을 설득력 있게 따라가는 연기의 진심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배우 박해준 / 사진=NEW

가끔 배우를 만나 직접 대화하다 보면 '이 사람이 이런 연기를 했다고?' 싶을 때가 있다. 이토록 순수하고 순박한 실체를 지녔는데, 어떻게 이렇게 무서운 연기를 했을까 싶어서다. 배우 박해준이 그랬다. 실제로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그는 생각보다 더 소탈하고 담백한 사람이었다. 웃음도 많고, 꾸밈없이 어수룩한 면모까지 지닌 배우였다.

영화 '휴민트'에서 그가 연기한 북한 총영사 황치성을 떠올리면, 이 간극은 더욱 또렷했다. 현실의 박해준과 스크린 속 황치성 사이의 거리는 배우라는 직업의 신기함을 새삼 실감하게 만든다.

'휴민트'에서 박해준이 연기한 황치성은 권력과 욕망에 충실한 북한 총영사다. 늘 여유로운 표정을 띠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의심과 불안, 폭력성이 뒤엉켜 있다. 직접 손에 피를 묻히기보다 말과 시선으로 상대를 압박하며 판을 움직이는 인물이다. 박해준은 이 복합적인 성질을 과장 없이 눌러 담으며 황치성을 비열한 권력의 얼굴로 완성한다. 이 냉혹한 얼굴이, 영화의 긴장을 끝까지 끌어올리는 핵심 동력이다.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 정말 기뻤어요. 류승완 감독님이 워낙 유명하잖아요(웃음). 배우라면 누구나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분이고요. 제게 예전부터 같이 해보고 싶었다고 기회를 보고 있었다고 말씀해 주셔서 더 영광이었죠. 거기에 조인성, 박정민 배우랑 같이한다고 했을 때 '아, 이건 재밌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배우 박해준 / 사진=NEW

박해준의 악역 연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매번 같은 얼굴로 소비되지 않았다는 점이 그의 강점이다. 그는 작품과 감독, 대본이 달라질 때마다 인물이 스스로 다른 힘을 갖게 된다고 봤다. 동시에 자신 역시 과거의 연기를 반복하는 순간을 경계해 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류승완 감독과의 긴 대화를 통해 황치성의 방향성을 세밀하게 조율했다.

"작품이 다르고 감독이 다르고 대본이 다르면 그 자체로 새로운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봐도 예전에 했던 걸 또 보여준 악역도 있긴 했어요. 그래서 류승완 감독님에게도 조금 부담된다고도 말했죠. 그런데 역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주시더라고요. 이 역할을 품위 있고 고급스럽고 멋지게 보이는 악당으로 만들고 싶다고요. 추천해 주신 영화도 한 30편쯤 됐어요. 그중에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크리스토프 왈츠 연기를 예로 들면서 직접 폭력을 쓰지 않아도 말끝이 칼날처럼 무서운 인물이었으면 한다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연기하는 과정에선 현장에 대한 신뢰를 크게 뒀다. 스스로를 과도하게 의심하기보다 틀리면 감독이 바로 잡아 줄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연기에 집중했다.

"부담감은 거의 없었어요. 내가 틀리면 감독님이 말해주시겠지 싶었어요(웃음). 현장 적응력이 굉장히 좋고, 요구하시는 대로 잘 바뀌거든요. 말을 잘 듣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감독님들 저랑 작업하면 후회는 안 하실 거예요.(웃음)"

배우 박해준 / 사진=NEW

특히 지난해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양관식 역으로 '국민 남편'이자 '사랑꾼' 이미지를 깊게 각인했던 터라 악역으로 돌아온 선택이 아쉽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런 계산을 잘 못해요. 이런 다음엔 뭐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잘 안 해요. 대본 좋고 하고 싶으면 해요. 그 이후의 일은 그냥 역할에 충실하게 잘했다는 소리만 들어도 감사하죠. 그래서 광고를 못 하나 싶기도 해요.(웃음) 저는 연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양관식과 황치성을 굳이 대비하지도 않았다. 한쪽은 가족을 위해 묵묵히 시간을 견디는 인물이고, 다른 한쪽은 권력과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다. 온도도, 결도 다르지만 박해준에게 중요한 건 보여지는 이미지가 아니다. 인물이 처한 조건과 선택을 설득력 있게 따라가는 연기의 진심에 있다. 그래서 그는 "양관식을 왜 지우냐"고 웃으며 말하면서도, 동시에 '부부의 세계' 이태오에서 양관식으로, 다시 황치성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궤적을 신기해했다.

"양관식 캐릭터를 왜 지워요. 아직도 드라마 잘 봐줬다고 하면 정말 좋아요. 오히려 '부부의 세계' 좀 지워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죠.(웃음) 어떻게 이태오에서 양관식으로 넘어갔지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 저를 그려준 제작진이 고맙고 대단하죠.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양하게 해볼 수 있어서 다행이고, 잘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박해준은 사랑꾼 가장이든, 권력에 사로잡힌 빌런이든 매번 주어진 인물 안에서 새로운 결을 찾는 데 집중해 왔다. 계산된 변신보다 성실한 몰입을 택해온 선택이 지금의 박해준을 만들었다.

"주변 반응을 통해 인기를 체감하지 않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내 시대가 왔다'고 말하기엔 아직 멀었다고 느껴요. 오히려 스스로를 더 붙잡고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커졌죠. 하루를 어떻게 살고 있는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계속 묻게 돼요. 있어 보이려 하지도, 일부러 부족한 척하지도 않고 그냥 하던 대로 중심을 잡고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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