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가장의 수난기', 하정우가 19년 만에 안방극장을 노크한 이유

윤준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03.10 09:59
배우 하정우가 19년 만에 tvN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으로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그는 가족과 건물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생계형 건물주 '기수종' 역을 맡아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이번 복귀는 콘텐츠 산업의 중심축이 영화에서 다른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사진제공=tvN

배우 하정우가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2003년 영화 ‘마들렌’으로 데뷔 후 어느덧 23년차에 접어든 그에게 새삼스럽게 ‘도전’이라는 표현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하정우가 TV로 돌아왔다"는 것은 산업의 변화 추이까지 알려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게다가 가족과 건물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장이나 건물주라는 다소 생소한 캐릭터를 맡으며 연기력의 폭을 한층 넓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하정우의 마지막 TV 주연작은 MBC 드라마 ‘히트’(2007)였다. 무려 1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때 하정우의 나이는 고작(?) 28세였다. 이후 그는 충무로로 투신했고, 최연소로 누적 관객 1억 명을 돌파하는 진기록을 썼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그가 주연 및 감독을 동시에 맡은 영화 ‘로비’와 ‘윗집 사람들’이 연이어 개봉되는 등 활동 스펙트럼을 점차 넓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하정우가 케이블채널 tvN 토일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연출 임필성, 극본 오한기)으로 안방극장을 노크하는 것은 꽤 의미가 크다. 이는 콘텐츠 산업의 중심축이 영화에서 그 외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충무로는 2019년 정점을 맞았다. 누적 관객 2억 명 시대를 열었고, 개봉작이 넘쳤다.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백두산’은 2019년 12월 개봉해 825만 관객을 모았다.

사진출처=스타뉴스DB

하지만 이듬해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가 시작되며 극장 산업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일단 관객수가 급감했다. 2020년 관객은 전년과 비교해 반의 반토막, 즉 4분의1 수준으로 줄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의 호황으로 미리 기획하거나 촬영해놓은 작품으로 몇 년은 버텼다. 하지만 이제는 투자 자체가 줄면서 개봉작도 가뭄을 겪고 있다. 흉년이 거듭되니 농사 자체를 짓지 않게 됐고, 씨를 뿌리는 시드 머니를 대는 투자자들이 지갑을 닫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하정우는 마지막까지 충무로를 지켰던 인물이다. ‘비공식작전’, ‘1947 보스턴’, ‘하이재킹’을 비롯해 2019년 이후 개봉한 주연작만 무려 6편이다. 그 중 2편은 직접 연출했다. 그 사이 최민식, 송강호, 김윤석 등 주로 스크린으로만 볼 수 있던 선배들이 속속 드라마로 복귀했다. 콘텐츠의 물꼬가 바뀌었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충무로에 매진하던 하정우가 숱한 러브콜 끝에 ‘대한민국에서 건물로 되는 법’을 통해 TV 복귀 신고식을 치르게 됐다.

9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하정우는 ‘안방극장 복귀’라는 표현이 나오자 "요즘 TV, 안방에서 보나요?"라고 특유의 농담을 건네며 "일단 실감이 안 난다. 시청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도 익숙지 않다. 촬영하면서 각오를 다졌기 때문에 지금은 겸허한 마음으로 시청자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담담하게 소감을 말했다.

사진제공=tvN

이 드라마에서 하정우는 꽤 흥미로운 두 가지 포인트를 움켜쥐고 있다. 건물주와 가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건물주는 "조물주 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의 상징이자 가장 안전한 투자처로 해석된다는 의미다. 중요한 건 그가 맡은 기수종이 ‘생계형 건물주’라는 점이다. 소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는다는 의미)해서 꼬마 빌딩을 마련한 그는 이자를 갚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처지다. 건물값이 올라 인생 역전을 노리지만 돌아온 것은 온갖 대출금과 이자 상환 독촉장이고, 건물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한다.

이는 기수종만의 고민이 아니다. 부동산 시장이 정체를 맞으며 건물 하나 갖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 적잖은 건물주들의 현실적 고민으로 대두됐다.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 그리고 이는 하정우 특유의 블랙 코미디 감각과 만나며 독특한 서스펜스물로 거듭난다.

그 역할을 하정우가 맡는다는 것도 대중들이 흥미롭게 들여다보는 포인트다. 그가 실제로 여러 채의 건물을 보유한 건물주이기 때문이다. 최근 보유한 건물을 매물로 내놓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던 그는 "부동산 시장이 안 좋아 2년 전 내놓은 물건"이라며 "이번 드라마를 찍으면서 심경의 변화를 겪은 것은 아니지만, 대본을 받고 감정이 이입됐다. 저 역시 부족했던 경제적 지식 때문에 매입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이 시나리오 받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진제공=tvN

하정우가 책임지는 또 다른 한 축은 ‘가장’이다. 그가 건물주의 길을 택한 것은 혼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발버둥이다. 그래서 그는 경매로 강제 매각당할 위기에 처한 건물을 구하기 위해 가짜 납치극에 가담하게 된다. 목숨보다 소중한 가족, 그리고 건물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발악이다.

하정우가 ‘가장’의 무게를 온 몸으로 표현하는 작품은 본인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허삼관: 매혈기' 이후 11년 만이다. 당시 하정우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피를 파는 아버지 역할을 연기했다. 여기서 지난해 방송됐던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언뜻 떠오른다. 이야기의 틀과 장르는 완전히 다르지만 부동산 하나를 중심으로 치열하게 삶을 일궈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몹시 닮았다. 그 부동산에 집착하는 이유는 ‘돈’의 영역을 넘어 가족들이 온전히 발뻗고 잘 수 있는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하정우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14일 첫 방송된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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