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2015)의 동룡이는 대중에게 배우 이동휘라는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캐릭터다. 하지만 너무 강렬한 연기의 잔상은 때로 배우에게 뛰어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되기도 한다. 이동휘는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로 단번에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지만, 대중이 기대하는 유쾌함과 배우로서 갈망하는 진중함 사이의 괴리를 겪었다.
영화 '메소드연기'에서 이동휘가 연기한 주인공 이동휘 역시 코미디 이미지에 갇혀 정극과 메소드 연기를 갈망하는 인물이다. 그가 직접 제작자로 나서 영화 기획에 적극 참여하고 실제 이름을 사용했을 만큼 배우로서 내적 고민이 투영된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이동휘는 자신을 직면하고 밀어붙이는 과정을 거치며 연기 스펙트럼을 한층 넓혔다.
"사람들이 제 연기를 보며 웃을 때 개인적으로 엄청난 행복을 느껴요. 하지만 인간 이동휘를 떠나 직업적인 면에서 봤을 때 비슷한 캐릭터에 머물며 큰 변화 없이 정체하는 모습은 스스로 방치할 수 없는 문제였어요.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내리막길을 걷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계속해서 독립영화나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것도 그래서예요."
'메소드연기' 속 이동휘는 외계인 분장을 한 '알계인'이라는 작품으로 '코미디 전문 배우'라는 이미지가 굳어졌지만, 사극 '경화수월'에 캐스팅되며 이미지 변신을 꾀할 메소드 연기에 도전한다. 이름과 직업, 상황까지 실제 이동휘와 맞닿아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겹친다. 하지만 이를 연기하는 건 그에게도 쉽지 않았다. 가공된 인물 뒤에 숨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나 자신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쑥스러웠어요. 머리도 길고 어떤 준비도 되지 않은, 제 리얼하고 흉한 모습이 대형 화면에 그대로 나오는 게 스스로 보기 힘들 정도였죠. 가족들에게 보여드리기도 민망해서 앞으로는 무조건 가공의 인물만 연기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웃음)."
영화는 이동휘의 고민뿐 아니라 각자 역할을 수행하는 우리 모두의 애환으로 시선을 확장한다.
"과거 지인의 장례식장에 있다가 저녁에 행사를 가야 했던 적이 있어요. 밝게 웃으며 행사를 마치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왔죠. 그때 '누구나 괴로움과 서글픔을 숨기고 가면을 써야 하는 순간이 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극 중 아픔을 끝까지 숨기는 어머니의 모습이나, 제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며 고통스럽게 연기했던 감정들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상황에 맞춰 버텨내는 우리네 삶 자체가 치열한 메소드 연기라는 걸 깨달았어요."
작품을 진정으로 사유하고 깊은 진정성을 담아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기혁 감독과의 20년 지기 우정도 한몫했다. 극을 풍성하게 채운 윤경호, 강찬희 등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 역시 그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특히 현봉식이 '최우식'이라는 이름으로 카메오 출연한 대목은 그가 가장 행복해했던 촬영 비하인드 중 하나다.
"감독님과는 20년 지기 친구지만 사람들 보는 데서 절대 티내지 말자고 했어요. 친구들끼리 가볍게 작업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현장에서는 필사적으로 존댓말을 쓰며 존중했죠. 배우 출신이라 연기하는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타이밍을 배려해 줘서 참 고마웠어요. 세트장에서 몇십 년 산 사람처럼 '착붙'이었던 윤경호 형님과, 본체는 놀라울 정도로 맑고 선한 강찬희 배우 덕에 제가 묻어갈 수 있었어요. 제일 좋았던 건 현봉식 배우가 최우식 역으로 흔쾌히 나와줘 관객 반응까지 터졌을 때였죠."
특히 극에서 어머니 정복자 역을 맡은 김금순의 존재는 이동휘에게 감정적으로 가장 큰 지점을 건드렸다. 실제 어머니와 닮은 모습 때문이었다.
"김금순 선배님은 제가 이동휘라는 인물을 연기하기 힘들다고 느끼게 한 가장 큰 이유였어요. 촬영 초반에 길을 걷는 선배님의 뒷모습이 정말 저희 어머니와 너무 닮아서 눈물 참느라 엄청 고생했거든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럽기도 했고, 내 안의 진짜 감정들을 꺼내서 연기한다는 게 이토록 고통스러운 일인지 새삼 느꼈어요."
때문에 영화 개봉이 확정됐을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작년 연말에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1월 1일 새해 문자를 병상에서 주고받았다. '새해 첫날부터 이러다니, 올 한 해는 정말 힘들겠구나' 싶어 눈앞이 캄캄했다. 꼼짝도 못 하고 누워있는데 3월 개봉 확정 전화를 받고 말 없이 눈물만 계속 흘렸다.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면서 '저거 내 이야기이기도 하네'라고 깊이 공감해 준다면 내겐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배우로서 가장 경계하는 건 머물러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날카롭게 담금질하는 쪽으로 저를 등 떠밀고 있어요. 스스로를 계속해서 괴로운 상황에 몰아넣고, 그 괴로움 속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습니다. 거창한 목표 의식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앞으로 더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역할이든 영원히 기쁘게 도전할 겁니다."
'메소드연기'는 오늘(18일)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