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우승은 김하온.'
Mnet '쇼미더머니12'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 문장에는 별다른 의심이 끼어들지 않았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누군가의 승리가 기정사실로 여겨진다는 것은 그가 가진 실력의 체급이 남다름을 의미한다. 지난 2일 방송된 파이널 무대에서 김하온은 모두의 예상대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뻔한 결말의 끝에 남은 것은 지루함이 아닌 가슴을 움직인 묵직한 전율과 감동이다. 소년이 청년이 되어 어떤 래퍼로 성장했는지 그 궤적을 확인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파이널 방송에서 김하온은 최종 무대를 앞두고 부모님을 찾았다. 이때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좀 더 깨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세게 하고 싶은 말을 뱉고 한 번 더 깨지면, 그다음엔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진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아버지는 대중이 사랑하는 아들의 프레임이 성장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임을 알았다. 18살에 읊조리던 평화와 명상은 그 시절 김하온에게 분명 진심이었다. 그러나 '고등래퍼2' 우승이라는 왕관을 쓴 채 8년의 시간을 건너오는 동안, 그는 세차게 흔들렸고 또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그래서 김하온에게 '쇼미더머니12'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무대인 동시에, 부딪히고 깨지며 끝내 자신을 옭아매던 낡은 껍질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방의 무대였다.
그 해방을 향한 갈망은 곧장 무대로 증명됐다. 김하온은 앞선 세미 파이널 무대에서 피처링 없이 홀로 무대를 꽉 채웠다. 오로지 자신의 호흡과 랩 스킬만으로 상대를 압도하겠다는, 실력에 대한 흔들림 없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반면 파이널 무대에서는 두 명의 게스트를 무대 위로 불러들였다. 이는 결승전이 주는 중압감이나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지나온 궤적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선명하게 펼쳐 보이기 위함이었다. 자신이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서 어떻게 꿈을 품었고, 누구와 연대하며 이 자리까지 걸어왔는지, 그 자전적인 드라마를 완성하기 위해 기꺼이 무대의 일각을 내어준 것이다.
첫 번째 곡 'R.I.L'에서 다이나믹 듀오 개코의 등장은 김하온이 처음 힙합에 매료됐던 풋내기 시절의 벅찬 열망을 대변했다. "발을 옮기는 나의 등을 두드려 준 건 VJ, 일리네어, 그리고 개코"라는 가사처럼, 꿈의 씨앗을 심어준 우상과 나란히 서서 "리듬이란 나의 삶을 움직이는 기름"이라며 타이트한 랩을 주고받는 모습은 뭉클했다. 이제는 씬의 최정상에서 선배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성공한 래퍼의 당당한 자기 증명이자 헌사였다.
이어진 두 번째 곡 'King's gambit'에서는 8년 전 함께 꿈의 밑그림을 그렸던 동갑내기 빈첸(이병재)과 마주했다. 과거 위태롭고 상처받은 10대를 대변하며 서로를 위로하던 두 소년은, 이제 "무겁네 행복, 무섭네 내 행동거지 하나하나"라며 왕관의 무게를 논하고 감당하는 어른이 되어 다시 섰다. 타격감 넘치는 비트 위에서 무언가를 부수는 듯한 제스처로 맹렬하게 자신의 몫을 쟁취하는 김하온의 허리에는 8년 전 '바코드' 무대를 연상시키는 체크 남방이 묶여 있다.
꿈을 품게 해준 이와, 꿈을 이뤄내는 길 위를 함께 걸은 이와의 조우. 김하온이 파이널에서 던진 연대의 메시지는 묵직했고, 그들이 피워낸 서사는 그 어떤 화려한 퍼포먼스보다 짙은 감동을 남겼다.
이변 없는 결과표 앞에서도 묵직한 여운이 남는 것은 바로 이 치열한 증명의 궤적 덕분이다. 우승의 상징인 꽃다발을 부모님께 안기며 그는 환하게 웃었다. "제가 ‘쇼미더머니’에 나오기로 한 이후로, 지금 이 순간만이 제 시나리오에 있었습니다."
18살의 김하온은 자퇴 이후 스스로 제 삶의 스승이 되어 세상을 관조하는 법을 익혔고, 그 태도만으로 또래들의 우상이 됐다. 그리고 26살이 된 지금, 그는 과거의 자신을 기꺼이 부수고 나와 한국 힙합 신의 정점에 섰다. '어차피 우승은 김하온'이라는 기대를 한 치의 불안함 없이 현실로 이뤄낸 그의 행보는 이제 또 다른 챕터로 접어든다. 깨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유로워진 이 청년이 앞으로 어떤 리듬과 언어로 제 세상을 만들어갈지, 기분 좋은 기대 속에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