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이전에 ‘힙합 아이돌’을 표방한 국내 보이그룹 두 팀이 있었다. 하나는 원타임, 또 하나는 빅뱅이다. 이 글의 주인공은 후자의 멤버 탑으로, 메인 래퍼였던 그는 메인 송라이터인 지드래곤 곁에서 빅뱅과 힙합을 엮어낸 든든한 동아줄이었다. 그런 탑이 구설수에 오른 뒤 택한 13년이라는 긴 침묵을 깨고 돌아왔다. 열한 트랙을 꾹꾹 눌러 담은 정규 앨범과 함께.
2022년 싱글 ‘봄여름가을겨울 (Still Life)’가 나왔을 때 탑은 “여건이 되면 언제든 빅뱅에 합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같은 해에 YG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끝내는 자리에서 냈던 자신의 의견(“빅뱅뿐 아니라 개인 활동 영역을 넓혀가 보고 싶다”)을 지금의 현실로 가져왔다. 11 트랙 정규 앨범은 빅뱅의 것이 아닌 탑의 솔로작인 것이다. 어쩌면 탑의 본격 홀로서기에 결정적 모티프가 됐을지도 모를 이 모든 정황을 가사에 새긴 ‘완전미쳤어! (Studio54)’가 음반의 타이틀곡이 된 건 그래서 필연처럼 보인다.
‘OVAYA (A SMALL, FILTHY SHOW WINDOW)’에서 재차 못 박고 있듯, 과거 잘못으로 향후 자신의 빅뱅 활동은 없을 거라는 건 이 앨범으로 사실이 됐다. 그는 빅뱅의 멤버로서가 아닌 탑으로, 최승현으로 다시 팬들 앞에 섰다. 이번 신보에 담긴 한 곡 한 곡은 그런 탑이 상처받은 팬들의 마음을 치유해줘야 한다는 뜻에서 품은 책임감의 전시다. 자신의 과오에 중첩돼 보였던 ‘오징어 게임’의 타노스가 이미지로서 정면 승부였다면, 이번엔 음악을 앞세운 두 번째 승부인 셈이다.
사실 앨범 제목의 ‘다중관점’은 페이크다. 설령 관점이 여러 개일지언정 대상은 하나다. 탑 자신이다. 탑은 첫 정규 앨범에서 지난 잃어버린 시간을 되새기는 심경과 입장을 일관되게 얘기한다. 그 일관된 입장은 오프닝 트랙 ‘탑욕 (SELF CRUCIFIXION)’이 자신(탑)을 비난(욕)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십자가형에 빗댄 반성을 동시에 내포케 하는 전략으로 구체화된다. 더러운 해를 구하느니 자신이 실제 갈 뻔한 달의 고요에 기대겠다는 저 은빛 반추는 차분해서, ‘서울시에 사는 기분 (SEOUL CHAOS)’을 통해 제아무리 “얼씨구 절씨구”를 외쳐도 근저엔 우울함이 한가득이다. 그건 ‘OVAYA’의 ‘OVA’가 ‘(게임)오바’에서 나온 거라는 데서도 번져 나오는 공통된 그늘이기도 하다.
다만 탑은 그 그늘을 방치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최승현은 대신 자기 주위에 만연했던 고뇌로부터 우주를 길어 올리기로 한다. 과거 ‘DOOM DADA’ 뮤직비디오에서 오마주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감독(스탠리 큐브릭)과 인류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가사에 등장하는 ‘Another Dimension Holy Dude!!!!!!!!’는 그걸 위한 두레박이다. 시공을 넘어선 이 절실함은 투팍을 인용한 ‘나만이 (THE GIANT)’의 코러스 가사가 내비치듯 저점에서 정점(Top Spot)을 향하리라는 래퍼의 목표로서도 거듭 의미를 띤다.
그러니 둔하고 느린 앨범의 전체 느낌 속에서도 희망의 기운은 간간이 그리고 뚜렷이 샘솟는 것이다. 가령 고릴라즈와 블랙 아이드 피스가 만난 듯한 ‘ZERO-COKE’의 멜로디가 그렇고, 비슷한 메시지를 품은 ‘BE SOLID’와 정반대 비트로 팬들을 향하는 ‘꼬깔코온 (FOR FANS)’도 마찬가지다. 또 일본 모델 오츠카 마유카(大塚まゆか)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DESPERADO’에서 들려준, 본인이 바리톤 랩뿐만 아니라 팔세토 노래도 거뜬히 해낼 수 있다는 탑의 보컬리스트로서 자신감도 그 이면의 빛이 구축한 다른 차원의 긍정으로 읽힌다.
언젠가 테일러 스위프트는 “내 이야기가 나의 전문성”이라고 말했다. 이는 힙합의 오랜 특징이요 본질이기도 하다. 탑은 이번에 그 본질을 끌어안고 앨범이라는 형식을 빌려 스스로를 위한 푸닥거리를 치러냈다. 그렇게 셀프 인터뷰, 팬들을 사제로 상정한 고해성사를 위해 돌아온 자의 용기는 오토튠 뒤에 웅크린 위축과 평행선을 그리며 천천히 윤색된다.
10년이다. 탑은 그 시간을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음악으로 숨을 쉬었고,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과 모멸감을 지워나갔다. ‘TOP SPOT - 다중관점 (ANOTHER DIMENSION)’은 그런 탑이 30대라는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캐낸 보석들이다. 샤프의 46년 전 노래에 담긴 공허를 예술작품에 극적으로 전율하는 스탕달 신드롬에 이식하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STENDHAL SYNDROME)’가 이 앨범의 여운으로 기능하는 건 그래서다.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