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부상으로 낙마했지만, 프로야구 KBO 리그에서 11세이브를 올려 세이브 선두에 오른 LG 트윈스의 마무리 투수 유영찬의 별명은 ‘어막선생’이다. 이를 풀어쓰면 ‘어쩌라고 막았잖아’다. 어떤 상황이 오든 팀의 승리를 지키는 모습을 ‘어쩌라고 막았잖아’라는 단어에 함축했다. 이 상황을 만일 예능을 만들고 출연하는 나영석PD에게 적용하면 어떨까. ‘어쩌라고 재밌잖아’가 아닐까.
나영석PD의 새 예능이 베일을 벗었다. 지난 3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7시30분부터 방송된 ‘꽃보다 청춘:리미티드 에디션’이다. 2014년 방송된 페루 편을 시작으로 그해 9월 방송된 라오스편, 2016년 방송된 아이슬란드편, 그해 2월 방송된 아프리카편 그리고 2017년 번외편으로 방송된 위너편까지 포함하면 그의 프랜차이즈 ‘꽃보다 청춘’의 다섯 번째 방송이다.
역시 ‘윤식당’ ‘서진이네’ 등으로 나영석PD 예능의 든든한 한 축을 맡고 있던 박서준과 정유미, 최우식이 출연한다. 정유미의 출연은 이번 프랜차이즈의 첫 번째 여성 출연자이기도 하다. 늘 청춘들이 모여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없는 살림에 즉흥적인 무전여행을 떠나는 콘셉트가 고스란히 살아났다. 단, 이번에는 국내편으로 세 명의 배우는 제작진이 정해준 규칙에 따라 하루에 반드시 한 도시씩 다른 도시를 여행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나영석PD의 ‘꽃보다 청춘’ 전형적인 전개를 따른다. 보통 ‘꽃보다 청춘’은 프로그램 미팅을 하다가 갑자기 출국을 하거나, 어떤 상황에서는 종방연을 하다가 갑자기 끌려가기도 했다. 이번에 제작진은 나PD의 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를 이용해 김대주 작가의 데뷔 20주년 기념 라이브라는 신박한(?) 작전을 짰다. 채팅방에 들어온 5000여 명의 누리꾼까지 작당해 이들을 속인 끝에 ‘꽃보다 청춘’ 출발 시그널이 내려진다.
그리고 궁상맞은 여행이 이어지는 것도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해외편에서는 그나마 검색의 기회는 줬지만, 국내에서는 물어물어 찾아가는 일이 가능하기에 휴대전화까지 압수해버렸다. 결국 세 사람의 여행기는 다분히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디지털 디톡스 콘셉트의 여행이 됐다. 이들은 최우식이 그렇게도 먹고 싶다는 대구의 뭉티기를 먹는 목적을 갖고 KTX를 통해 대구로 내려가는 줄거리가 1편에 그려졌다.
일단 전체적으로 틀은 유사하다. 어찌 보면 시간이 지났지만, 그 틀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다고 봐도 된다. 또한 출연자 역시 비슷하다. 2014년에 시작한 형식으로 2017년 ‘윤식당’으로 인연을 맺은 출연자들이 등장한다. 12년 묵은 형식에 9년 묵은 출연자가 등장하지만, 프로그램은 쉼 없이 변주를 준다. 이는 나영석PD가 지금까지 다양한 예능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던 방식과 유사하다.
나PD의 예능은 크게 여러 키워드를 가진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단순한 ‘여행’이 목적이라고 하면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 시리즈를 이어간다. 여기에 현지에서의 적응과 장사가 추가되면 ‘윤식당’ ‘서진이네’ ‘스페인 하숙’ 정도가 된다. 그리고 밥을 해 먹는 예능 ‘삼시세끼’ 시리즈가 있다. 최근에는 게임성을 대폭 추가한 아이템도 넣었다. ‘신서유기’로 시작된 시리즈는 ‘강식당’을 지나 최근의 ‘뿅뿅 지구오락실’로 진화했다.
이광수와 김우빈, 도경수 등이 출연하는 ‘콩콩팥팥’ 시리즈는 여행에 현지 장사를 조금 뒤섞은 형식이 된다. 이처럼 나영석PD의 tvN 이적 이후 15년에 가까운 필모그래피에는 하나의 요소를 찾고 이 안에서 변주와 확장을 거듭하는 그만의 법칙이 남아있다. 그리고 ‘꽃보다 청춘:리미티드 에디션’은 여행에 방점을 찍는다.
늘 자주 보던 인물이지만 셋은 다른 모습도 보인다. 늘 완성된 요리사였던 박서준은 의외의 꼼꼼함과 여행단의 리더처럼 계획을 짜고 이끄는 모습을 보이며, 싹싹하고 수완좋은 경영자였던 정유미는 준비성과 의외의 사교성을 갖춘 ‘포포(44세)누나’로 거듭난다. 방점을 찍는 것은 최우식의 캐릭터다. 라이브 방송 공지를 듣고 뭔가 이상해 짐을 싸 왔던 둘과 달리 최우식은 자연인(?) 그대로의 모습으로 라이브 방송을 찾았다 여행까지 떠난다. 늘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뭔가에 꽂히면 계속 조르는 모습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세 사람은 ‘윤식당’과 ‘서진이네’ ‘여름방학’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동료로서 굳어졌던 관계를 다시 누나와 동생, 친구의 영역까지 확장한다. 이 사이에 최우식이 시시때때로 꺼내 드는 캠코더의 예전 느낌 영상이 함께 하고, 버스로 가면 될 것을 괜히 KTX를 타 하루 체재비의 절반을 날리는 연예인다운(?) 세상물정 모르는 모습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꽃보다 청춘:리미티드 에디션’은 첫 방송 결과 전국 3%대, 수도권에서는 4%대의 나쁘지 않은 시청률을 보여줬다. 결국 봤던 형식, 봤던 얼굴이지만 어떻게 가공해내느냐에 따라 편안하게 그 나름대로 따라갈 길을 주는 나영석PD 예능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느낌도 있다. 식상해서 어쩌라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 어쩌라고, 어쩌라고 재밌잖아.
어쩌면 매번 도전하고, 혁신해야 하는 시대의 틈바구니 속 늘 가던 밥집 같고, 늘 만나던 사람 같고, 늘 보던 풍경 같은 일상성에서 오는 편안함이 나PD 예능의 정수가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숏츠와 릴스로 점철된 변화무쌍한 콘텐츠의 강 속에서 한 마리 연어처럼 나PD가 펼치는 편안한 여행을 찾아 돌아오는 이유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하늘도 돕는다. 원래 눈이 잘 오는 대구에 눈이 오기도 했다. 눈 맞으며 흠뻑 젖어 고생하는 삼총사의 모습은 깨알재미를 선사했다. 어쩌라고 이렇게라도 해서 재밌으면 됐잖아.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