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에는 늘 비교가 따라붙는다. 같은 시간대에 공개되는 작품, 비슷한 위치에 놓인 배우와 가수, 한 장르 안에서 보여주는 다른 선택, 한 인물이 만들어낸 색다른 얼굴까지. 우리는 이미 일상적으로 'VS'를 떠올리며 보고 듣고 말한다. 이 코너는 이런 비교를 출발점 삼아 '차이'가 어떤 재미와 의미를 낳는지를 살핀다. 같은 판에 놓였지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대상들을 나란히 놓고 각각의 방식과 매력을 면밀히 짚는다. <편집자 주>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이 뜨거운 반향을 낳고 있다. 나화진(김무열)을 필두로 한 교권보호국의 거침없는 사이다 액션이 흥행의 1등 공신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영웅의 주먹이 시청자들에게 절대적인 카타르시스와 당위성으로 와닿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영웅의 주먹을 부르는 가해자들의 열연 덕분이다.
히어로물의 완성도는 빌런의 악랄함에 비례한다. 분노를 유발하는 악의 평범성과 교활함, 제도의 맹점을 비웃는 뻔뻔함까지. 극의 텐션을 쥐고 흔든 서늘한 가해자들의 다채로운 연기 대결과 그들이 그려낸 악의 얼굴들을 조명한다.
# 절대 방패를 쥔 자들 : '국회의원 아들' 이승규 VS '촉법소년' 장요훈
1회의 포문을 여는 대한고등학교 에피소드의 류준형(이승규)과 6회의 민지웅(장요훈)은 자신을 보호하는 절대 방패를 믿고 날뛰는 악의 끝을 보여준다.
류준형은 권력형 학교 폭력의 섬뜩한 민낯이다. 유력 대권 주자인 국회의원 아들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무기로 교실을 지배하는 그는, 동급생을 끔찍한 죽음으로 내몰고도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안하무인의 결정체다. 이승규는 교권국 앞에서도 반성 없이 눈을 부라리며 교실에 기름을 들이붓는 악랄함을 서늘하게 그려내며 극 초반의 분노 게이지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눈 밑 근육까지 실룩이는 오만한 표정 연기는 시청자들의 주먹을 쥐게 하기 충분했다.
반면 6회의 민지웅은 법의 사각지대라는 방패를 쥐고 흔든다. 마약을 유통하고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나는 촉법이라 처벌받지 않는다"며 실실 웃는 특유의 얄미운 연기는 법의 맹점을 조롱하는 영악함을 극대화한다. 놀라운 것은 이 14세 촉법소년을 연기한 장요훈이 실제로는 30대 중반 배우라는 점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앳된 얼굴로 뱉어내는 조롱 섞인 대사들은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하며 우리 사회의 촉법소년 이슈를 날카롭게 찔렀다.
# 날것의 에너지: '만화 찢고 나온' 옥진욱 VS 'K-양아치' 유태주
2회 구운하이텍고 에피소드에서 원초적 폭력을 행사하는 조인범(옥진욱)과 박성환(유태주)의 시너지는 날것의 양아치 구현도 100%를 자랑한다. 이들은 무거운 감정선보다는 강렬한 캐릭터성과 활극 특유의 톡톡 튀는 에너지로 화면을 장악한다.
박성환 역의 유태주가 동네 골목 어귀에서 마주칠 법한 K-양아치를 거친 언행과 껄렁한 태도로 재현했다면, 조인범 역의 옥진욱은 마치 일본 학원 폭력물을 찢고 나온 듯한 포스로 시선을 강탈한다. 두 배우는 서로 다른 결의 불량미를 뽐내며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특히 나화진의 무자비한 '참교육' 앞에서도 펄떡이는 활어처럼 날뛰는 두 사람의 맹렬한 텐션과 생동감 넘치는 리액션은 극을 경쾌한 액션 활극으로 이끈 강력한 신스틸러였다.
# 웃는 얼굴 뒤에 숨은 잔혹함 : '사이버 불링' 박서윤 VS '계산적 폭력' 김재선
주먹이 아닌 머리와 익명성으로 교실을 파괴하는 지능형 빌런들의 활약도 소름을 유발했다.
3회 소연여자고등학교 에피소드는 최근 사회적 화두인 사이버 불링과 디지털 마녀사냥을 정조준한다. 인플루언서 한예리(박서윤)는 자신의 인지도를 무기로 학급 분위기를 조작하고 교사를 죽음으로 내모는 영악한 폭력을 행사한다. 박서윤은 티 없이 순진하고 해맑은 얼굴 뒤에 숨겨놓은 음흉하고 잔혹한 본성을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앞에서는 천사처럼 웃으면서 뒤로는 타인을 고립시키는 이중적인 연기는 차원이 다른 분노를 유발했다.
9회 이치호 역의 김재선 역시 신종 학교 폭력의 중심에서 치밀하고 계산적인 면모를 뽐낸다. 급우들을 교묘하게 장기말로 쓰며 판을 흔들던 그는, 결국 거대 범죄의 사각지대 속 조규철(이봉준)에게 철저히 이용당하며 추락하고 만다. 김재선은 가해자의 비열함부터, 더 큰 악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10대의 불안정한 내면까지 밀도 높게 연기하며 입체적인 악역 서사를 완성했다.
# 비뚤어진 모정이 낳은 괴물 : 역대급 학부모 빌런 박지연
학생 빌런들을 압도하는 서사 끝판왕에는 5회를 장악한 역대급 학부모 빌런 우진 엄마 역의 박지연이 있다. 그는 아들을 향한 과잉보호와 교사를 향한 악성 민원을 교묘하게 정당화하며 스스로 괴물로 타락해 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빌드업했다.
맘카페에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담임 교사를 정서적 아동 학대로 고소하며 폭주하는 후반부의 서늘한 광기는 웬만한 스릴러 영화를 능가한다. 우아한 미소로 교사의 숨통을 조이던 그가 나화진의 역지사지 응징 끝에 상처받은 아들의 고백을 마주하고 무너져 내리는 순간은 5회의 백미다. 박지연이 쏟아낸 밀도 높은 오열과 충격에 휩싸인 연기는 일그러진 교육관을 가진 우리 사회 어른들에게 깊고 묵직한 일침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