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간지’가 돌아왔다. 배우 소지섭이 주연을 맡은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이 2회 만에 전국 시청률 15.7%(닐슨코리아 기준)를 달성했다. 2026년 방송된 드라마를 통틀어 최고치다.
단순히 ‘재미있어서’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재미는 1번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환경까지 조성됐다. 넷플릭스 ‘참교육’이 글로벌 인기를 누리며 불의에 대한 통쾌한 응징을 향한 대중적 바람이 커졌고, ‘김부장’은 ‘참교육’의 여운을 잊지 못한 이들의 가려운 곳곳 박박 긁어주고 있다.
그리고 화룡점정을 찍은 주인공은 단연 소지섭이다. 오죽했으면 멋이나 스타일을 뜻하는 일본어 ‘간지’(感じ, かんじ)라는 별명이 붙은 소지섭의 빼어난 액션과 넘치지 않는 감정 연기는 ‘김부장’의 인기에 기름을 부었다.
‘김부장’의 시청률 추이는 실로 놀랍다. 1회가 9.5%였다. 물론 이는 앞서 방송된 ‘멋진 신세계’의 영향이 적잖다. 임지연과 더불어 허남준이라는 새로운 스타를 낳은 ‘멋진 신세계’는 11.8%로 배턴을 넘겨줬다. 전작의 인기가 아무리 높아도 통상 그 절반 수준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고려할 때 ‘김부장’은 이미 소지섭을 중심으로 라이징 스타인 윤경호, 최대훈과 주상욱 등 연기파 배우들의 조합, 아울러 원작의 팬덤까지 겹치며 산뜻하게 출발선을 끊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진짜 중요한 분기점은 2회였다. 15.7%로 1회(9.5%)보다 무려 6.2%포인트 뛰어 올랐다.
다른 드라마와 비교해보자. 올해 방송된 미니시리즈(주말·일일극 제외) 최고 시청률 순위를 살펴보면 MBC ‘21세기 대군부인’(13.8%), SBS ‘판사 이한영’(13.6%), tvN ‘언더커버 미쓰홍’(13.1%)가 1∼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김부장’은 이를 단 2회 만에 갈아치웠다. 당연히 다음 목표는 ‘마의 시청률’이라 불리는 20%다.
‘김부장’은 유튜브 등 온라인 상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명 콘텐츠 리뷰 채널인 김시선, 고몽 등에서는 1∼2회 하이라이트가 조회수 200만∼300만 회를 기록 중이다.
그렇다면 대중이 ‘김부장’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밀히 말해 ‘김부장’의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는 김부장(소지섭)은 사실 1급 블랙요원 출신이다. 원래 북한군 소속이었으나 한국으로 넘어온 후 이중 스파이 활동을 해왔다. 북한에서는 지명수배됐고, 한국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블랙요원 신분에서 벗어나 딸을 키우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동네 양아치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참는 것은 "딸을 위해 뭐든지 해내는 세상 모든 아빠들처럼 살아 달라"라는 아내의 유언과 더불어 남북 정보기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딸이 실종된 후 김부장은 본모습을 드러낸다.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며 딸을 찾기 위해 직접 나선다.
이 로그라인, 낯설지 않다. 영화 ‘아저씨’나 ‘테이큰’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뻔한 이야기’라 하지 않는다. 왜일까? 이런 복수 구조는 이미 ‘클래식’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익숙한 이야기를 얼마나 새롭게 버무리느냐에 달렸다. 그런 측면에서 소지섭이라는 걸출한 액션 스타를 앞세운 ‘김부장’은 이미 대중이 원하는 장르적 쾌감을 완벽히 충족시키고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참교육’의 성공은 ‘김부장’의 인기를 견인하는 주요 요소가 됐다. ‘참교육’은 무너진 교권을 바로잡는 교권보호국 감독관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학교 폭력 가해자, 악성 민원을 쏟아내는 학부모, 많은 팔로어를 배경 삼아 사이버 폭력을 저지르는 여고생, 학생들을 차별하는 교사들이 응징의 대상이었다. 그들이 죗값을 치르는 과정을 지켜보며 대중은 "사이다"(속이 뻥 뚫리듯 시원하다)라고 외쳤다.
‘김부장’은 그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참교육’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도 촉법소년이 등장한다. 극중 가해자는 "우리는 법이랑 아무 상관이 없다. 미성년자라서"라고 이죽댄다. 대중이 뒷목잡게 만드는 대목이이다. 하지만 김부장은 전혀 자극받지 않은 듯 총을 겨눈 채 그를 응징하며 말한다. "촉법소년? 표현 좋네. 그럼 나는 무법중년 해야겠다."
‘참교육’과 ‘김부장’의 차이는 있다. ‘참교육’은 교육관 장관이 직권으로 만든 교권보호국 감독관들이 정당한 권한을 부여받은 후 불의를 처단한다. 하지만 김부장의 방식은 사적 제재다. 앞서 방송됐던 ‘열혈사제’, ‘모범택시’, ‘빈센조’ 등과 같은 결이다.
하지만 대중은 이를 탓하지 않는다. 이런 대중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봐야 한다. 김부장의 딸 민지(서수민)는 ‘홀아비의 딸이라 냄새 난다’는 식으로 놀림을 받는다. 대거리를 하면 물리적 폭력이 돌아온다. 이에 맞서자 가해자의 부모가 출동한다. 대기업 건설사의 오너다. 그러자 교장까지 뛰어나와서 그들 앞에 허리를 조아리며 민지를 가해자로 몰아간다. 정의는 실종됐다. 민지는 억울하지만, 김부장은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 더욱 기고만장해진 학폭 가해자들은 민지를 더욱 괴롭히고, 일진을 넘어 폭력배까지 끌어들인다. 이처럼 돈과 권력을 쥔 가해자 앞에 놓인 민지를 구하기 위해 김부장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모든 서사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건 결국 배우들이다. 소지섭은 고등학생 딸을 키우며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아빠의 모습부터, 서늘한 눈빛으로 북한에 침투해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까지 더할 나위 없는 ‘맞춤형 연기’로 소화한다. 절제된 표정과 말투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건 소지섭이라는 배우의 전매특허다. 특히 군더더기없이 정확히 필요한 동작만 보여주는 액션은 명불허전이다.
여기에 윤경호, 최대훈은 코믹 연기까지 곁들인다.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지만 은근히 서열을 따지는 그들의 귀여운 다툼은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김부장’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여기에 그동안 ‘실장님 전문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댄디한 모습을 보여줬던 주상욱의 악역 변신 역시 눈길을 끈다.
이처럼 ‘김부장’은 훌륭한 재료를 갖추고 솜씨 좋은 요리사가 만든 일품 요리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모처럼 ‘시청률 20%’라는 의미있는 기록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진다.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