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의 노래를 듣기 전엔 늘 심호흡을 하게 된다. 또 얼마나 적적해질지 사무치게 될지, 그러다 얼마만큼 감탄하게 될지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소라 노래의 재생을 앞둔 그 몇 초는 사뭇 긴장되면서도 달뜬 마음을 진정시켜야 하는 역설의 시간이다. 7년 만의 신곡. 인생 10분의 1 언저리 스튜디오 공백기를 보내고 마이크와 스피커 앞에서 떨리는 건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이들이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못갖춘마디에 갇혀있던 노래는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피어오른다. 악기와 연주는 다분히 클래식 쪽으로 기울어 있지만, 그 고즈넉한 운치 위에 서글픈 낭만을 보태는 건 역시 이소라의 목소리다. 변하지 않았다. 눈물을 담아 바람을 닮은 그녀의 노래 연기는 무르익었다는 뻔한 표현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완숙의 경지를 들려준다. 언뜻 뮤지컬의 한 도막 같기도 한 이 경지를 위해 참여한 보컬 디렉터는 다름 아닌 조규찬이다. 1995년 이소라의 솔로 데뷔작에 자신이 주었던 곡 제목처럼 조규찬은 마치 자신의 존재가 가수에게 ‘운명’인 듯 그녀 노래가 갈 길을 담담히 내고 있다. 과연 30년 이상 우정이 빚어낸 편안한 독백은 무던히도 감미롭다.
새싹처럼 피어오르던 노래가 거대한 나무로 변해가는 풍경은 역시 스트링 편곡의 힘이다. 헤비한 전기 악기 없이도 헤비한 슬픔을 표현해 낼 수 있는 클래식의 저력이 평화롭게 요동친다. 거기에 신비롭고 아련한 코러스가 후반부에 더해지면서 이 지상의 노래는 천상을 향해 날개를 편다. 곡의 탄생은 지난봄 공연 중 ‘여름에 부르는 사랑 노래’를 떠올린 이소라의 영감에서 비롯됐다. 작곡은 그녀가 평소 눈여겨보던 잔나비의 두 멤버에게 맡겨졌고, 최정훈과 김도경이 쓴 음표들은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기라도 했던 듯 자연스럽게 거두어져 이소라의 품에 안겼다.
그러고 보니 여름에 부르는 사랑(이라 쓰고 이별이라 읽는) 노래를 염두에 둔 이소라와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만든 크리에이터들이 함께 한 건 언뜻 자연의 이치처럼도 보인다. 결과물은 흥미롭게도 잔나비의 것이기도 하며 이소라의 것이기도 하다. 한영애가 부르든 노사연이 부르든, 마야가 부르든 이소라가 부르든(솔로 3집에 수록된 ‘Curse’가 김태원의 곡이었다) 김태원의 곡이 예외 없이 부활의 정서를 띠는 것처럼, 잔나비의 곡도 이소라의 가사와 감성을 빌렸을 뿐 그 요소들을 빼면 현악 어레인지를 즐기는 잔나비의 곡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잔나비에 이소라가 합류했다 해도 수긍이 가고, 잔나비가 이소라의 밴드가 되었다 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조화가 곡 ‘너의 얼굴 다 잊을게’에는 있다.
가사는 늘 그래왔듯 가수가 직접 썼다. 이소라가 썼으므로 해맑은 무엇을 바랄 순 없겠다. 우린 여름으로 데려온 노래를 언제든 겨울로 데려갈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가 이소라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역시나 해를 떨어뜨리고 별들을 불러 모은 이소라는 상대의 혀끝 담담한 말에 두 번 무너지는 마음을 이야기하며 곡의 첫 문단을 맺는다. 무너진 마음을 감당하는 쪽은 여름밤의 기적 같은, 그래서 구원 같은 한 줄 바람에 설레 이별의 순간을 묻으려도 해보지만, 이미 벌어진 헤어짐은 “한없이 찬” 현실로서 뚜렷할 뿐이다. 다른 싱어라면 잔나비가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얼마든지 따뜻한 연인의 행복을 노래할 수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처연함을 자신의 본질로 삼는 듯한 이소라에게 그건 너무 지루한 주제였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에도 재킷 사진처럼 어둠 속에서 고개를 떨구는 쪽을 택했다. 희고 말간 동화 같은 음악과 엄숙하고 상처 입은 고독의 시는 이렇듯 요소의 상극이라는 예술의 동력으로서 깊이 발휘된다.
무릇 훌륭한 발라드엔 거절하기 힘든 멜로디, 무드와 납득할 수밖에 없는 노랫말이 있다. 그리고 저것들을 최적으로 표현해 내는 가수의 역량이 거기에 가미될 때 이제 발라드는 다수의 공감을 넘어 불멸의 영역까지 바라본다. 이문세의 ‘옛사랑’부터 손디아의 ‘어른’까지, 잊기 힘든 느린 노래 하나는 늘 그런 식으로 만인의 가슴을 훔쳐 왔다. 그렇게 노래들은 때론 위로가 되었고 함께 울어주는 친구가 되었다. ‘너의 얼굴 다 잊을게’도 그런 곡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김성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