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집밥', 이준익의 말이 틀렸으면 좋겠다

윤지훈(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09.15 14:42

조부모, 부모, 자녀 3대가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가족 드라마
이준익 감독이 숏폼이란 신소재 그릇에 차려낸 '아버지의 밥상'

이준익 감독은 모바일 플랫폼에 최적화된 세로 화면의 숏폼 드라마를 엮은 장편영화 '아버지의 집밥'을 선보였다. 영화는 요리 방법을 잊은 아내를 대신해 요리를 시작한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고단함과 아픔을 다채로운 표정으로 담아냈다. 이 감독은 이 작품을 60~80대가 많이 보길 바란다고 했으나, 이는 3대가 공유할 수 있는 따뜻한 정서를 통해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려는 의지의 역설로 풀이된다.
사진제공=레진스낵

이준익 감독의 말은 ‘틀렸다’. 아니, 틀렸으면 좋겠다.

영화 ‘왕의 남자’로 1000만여 관객을 불러 모으고, ‘라디오 스타’ ‘자산어보’ 등으로 사람 사는 세상의 따스한 온기를 전한 그는 ‘동주’ ‘박열’ 등을 통해 시대의 결기를 스크린에 풀어내기도 했다. 덕분에 관객은 그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드러내왔고, 감독 역시 변함없어 보이는 핍진함의 노력으로 그들과 소통해왔다.

이 감독은 최근 ‘아버지의 집밥’을 신작으로 내놓았다. 모바일 플랫폼에 최적화한 세로 화면에 회당 2~3분 분량의 에피소드를 담은 숏폼 드라마를 연출해 먼저 각각 선보인 뒤 이를 새롭게 묶은 장편영화다.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신설한 ‘숏폼 시네마’ 부문에서 초청 상영한 영화는 9일 롯데시네마에서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영화 속 40여년 동안 집안의 가장인 남편(정진영)과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된장찌개를 끓여내야 했던 어머니(이정은)는 어느 순간 요리하는 방법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가부장인 남편이 대신 요리를 해야 할 판. 남편은 도마와 칼과 접시와 온갖 식재료를 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가 끓이고 튀기고 버무리고 삶아내는 음식이란, 아내에게는 도통 성에 차지 않는다. 남편이 끓이고 튀기고 버무리고 삶아 내온 음식이 맛있으면 칭찬을, 그렇지 않으면 벌점을 주기로 한 어머니는 “벌점 10점을 채우면 이혼하겠다”고 선언한다. 과연 남편은 이혼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영화는 두 사람이 음식을 사이에 두고 지나온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풀어낸다. 고단함은 결국 남편과 아이들이 외면해온 아내이자 어머니의 아픔을 드러내고야 만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의 집밥’은 대부분 장면을 한 인물의 얼굴과 표정과 움직임으로만 채운다.

세로 화면으로 구성된 이야기인 만큼 카메라가 시선을 집중하는 인물의 주변 상황 또는 배경 또는 환경을 동시에 담아내기에는 무리가 따랐을 것이다. 한 화면에 여러 명의 인물이 들어서는 것 역시 부담스러웠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인물에게만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

그럴 때 한 인물의 다채로운 표정이 화면에 꽉 찬 모습으로 관객의 시선에 제대로 들어온다. 관객은 굳이 해당 인물과 그 주변의 상황 또는 배경 또는 환경 그리고 이 요소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또 다른 인물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야기가 비교적 단순하게 흘러가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진제공=레진스낵 

이 같은 이야기를 펼쳐 보이며 세로의 화면이 집중하는 각 인물들의 표정이 드러내는 정서는 온전히 전해져온다. 굳이 인물의 주변 상황 또는 배경 또는 환경 그리고 이를 통해 그려내려는 인물들의 관계를 떠올리지 않아도 관객은 충분히 인물들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집밥’은 가족의 이야기 아닌가. 늘 갈등하고 충돌하는 우리네 모든 가족의 이야기가 한 화면에 가득한 인물들의 다채로운 표정이 드러내는 정서로써 관객이 쌓아가는 공감의 폭과 깊이는 더 넓고 깊을 터이다. 우리가 언제나 곁에서 바라보는 바로 가족의 얼굴들이니 말이다.

이 감독은 이 같은 작업을 도전(挑戰)이 아니라 응전(應戰)이라고 말했다. 도전은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건다’는 의미이다. 응전은 ‘상대의 도전에 응해 싸운다’는 뜻이다. 두 낱말 모두 싸움을 전제로 한 의미를 나타내지만, 응전은 싸움의 목전에 놓인 상황을 좀 더 관망하고 거기에 걸맞은 전략과 전술로써 나서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감독에게 숏폼 드라마와 이를 엮은 또 하나의 작품은 그가 모바일 플랫폼과 디지털이 장악한 세상에 맞서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택했음을 말해준다. 그 자신 “생태계에 대한 반응”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반응”을 넘어 그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또 다른 경로를 찾아 나섰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서 이준익 감독은 ‘아버지의 집밥’을 두고 “60~80대가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감독의 이 말은 ‘틀렸다’. 아니, 틀렸으면 좋겠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정서의 폭과 깊이가 그 세대에게 더욱 넓고 깊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통해 그들에게 작은 위안의 말을 건네고 싶었던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스로 할아버지·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 자식들의 3대가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하지 않았나.

‘아버지의 집밥’은 바로 그런 까닭에 세로 화면이라는 최첨단의 제작 형식과 거기에 웅숭깊게 스며든 따스함의 정서가 어우러지는 이야기라는 역설의 재미를 안겨준다. 세로 화면의 젊은 형식은 이 이야기에 더욱 잘 어울리는 공감의 무대가 된다. 웅숭깊은 정서는 인생의 쓰고 달콤함의 사이를 격렬하게 오가며 맛본 세대의 회한과 추억이 화면에 가득 담긴 인물의 표정에 맞닿게 한다. 감독이 끓이고 튀기고 버무리고 삶아 내놓은 형식과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그렇게 더욱 맛깔스럽게 익혀져 극장이라는 밥상에 차려졌다.

무릇, 잘 끓이고 잘 튀기고 잘 버무리고 잘 삶아진 음식이야말로 젊고 늙음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입맛의 즐거움을 안겨주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준익 감독의 말은 틀림으로써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의 역설인 셈이다.

영화 속 남편이자 아버지 역을 연기한 정진영이 끓여낸 된장찌개의 향취가 아직 코끝을 아른거린다. 오늘, 된장찌개 한 뚝배기 끓여야겠다.

윤지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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