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1·2 백기태(현빈)는 가만히 있어도 위협적인 남자다. 말은 짧고 태도는 느긋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의 운명쯤은 쉽게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권력을 휘두르고 마약으로 부를 쌓는 이 남자에게 시선이 붙들리는 것은 현빈이 그 잔혹함에 부여한 매혹 때문이다. 힘을 쓰기 전부터 상대를 압도하는 육체, 타인의 처지를 아랑곳하지 않는 여유가 화면을 팽팽하게 당긴다. 톰 하디가 거친 남자들을 연기하며 보여줬던 위압적인 남성성이 '메이드 인 코리아' 속 현빈에게서 발견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베인,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 포레스트 등을 연기한 톰 하디는 출연작마다 신체의 위압감에 섬세한 감정과 불온한 기운을 실어 왔다. 가만히 있어도 언제 폭력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을 만드는 배우다. 한국에도 걸출한 악역은 많았지만 육체의 묵직함과 잔혹함을 그 자체로 도취적인 매력으로 만드는 배우는 드물었다. 현빈은 백기태로 그 자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힘은 움직임을 아끼는 데서 나온다. 기태는 사람을 움직이는 데 익숙하고 현빈은 그 익숙함을 서두르지 않는 태도로 표현한다. 표정을 쉽게 열지 않고 대사를 절제하면서 상대가 먼저 반응하게 한다. 묵직한 체격에 이런 여유가 더해지니 작은 표정 변화에도 무게가 붙는다. 매 장면 멋있다는 감탄은 외모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힘을 정확히 아는 사람의 태도가 그 얼굴을 더욱 위압적으로 만든다.
시즌2에서 대통령을 대하는 장면은 그 연기의 세밀함을 보여준다. 대통령의 "차기 중정부장"이라는 소개에 기태는 벅찬 얼굴로 "목숨을 바치겠다"며 허리를 숙인다. 대통령이 떠나자 비릿하게 웃으며 "중정부장"을 되뇌는 얼굴에는 탐욕이 번진다. 현빈은 충성하는 사람의 감격을 권력을 차지할 사람의 만족으로 바꾼다.
대통령을 시해한 조남식(정해균)의 차량을 막아서는 장면에서는 냉혹한 판단력이 카리스마를 만든다. 현빈은 상관을 버리는 선택에 감정적인 소모를 덧붙이지 않는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일이 몸에 밴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 매끄러움이 기태의 잔혹함을 설명한다.
동생 기현(우도환)과 마주할 때는 다른 압박이 생긴다. 보안사 취조실에 앉아서도 기태는 형으로서 우위를 놓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기편에 설 것을 요구하는 태도에는 애정과 소유욕이 뒤엉켜 있다. 현빈은 가족 앞이라고 인물을 갑자기 부드럽게 풀어놓지 않는다. 자신이 키우고 보호한 동생이니 끝내 자신의 뜻을 따를 것이라는 확신을 남긴다. 그 확신이 단단할수록 형제 관계의 균열은 위태롭게 다가온다.
이런 현빈이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은 아니다. '내 이름은 김삼순'과 '시크릿 가든'에서 까칠한 태도와 애정의 간극으로 설렘을 만들었던 그는 '친구, 우리들의 전설'에서 상처와 폭력을 품은 동수를 연기했다. '공조'에서는 과묵함과 단단한 신체를 액션의 설득력으로 삼았고, '협상'에서는 반듯한 얼굴에 위협적인 기운을 얹었다. 백기태는 그동안 따로 보여줬던 매혹과 냉기, 육체의 힘이 한꺼번에 작동하는 인물이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던 힘은 이제 자신의 욕망을 관철하는 힘으로 쓰인다. '하얼빈'에서 신념의 무게를 감당하던 얼굴에는 권력을 누리는 자의 오만이 들어섰다. 마흔을 넘긴 현빈은 지금의 얼굴과 체격, 연기 경험에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었다. 나이가 더한 무게를 인물의 권위로 바꾸면서도 배우로서 매혹은 더욱 짙게 만들었다.
물론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의 마무리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건영(정우성)과의 대결로 긴장을 쌓아온 이야기가 동생의 손에 죽는 기태의 최후로 급히 닫히면서 용두사미라는 반응도 나왔다. 배우의 존재감이 인물의 선택을 충분히 설명해줄 수는 없다. 다만 결말의 허전함과 별개로 현빈의 연기는 건져 올릴 만하다. '현빈을 위한 드라마'라 해도 좋을 만큼 그는 등장하는 장면마다 시선을 집중시켰다.
백기태 이후 기대되는 것은 현빈이 더 과감하게 자기 얼굴을 쓰는 일이다. 아름답게 사랑하는 남자에서 잔혹하게 욕망하는 남자까지, 그의 매력은 이제 훨씬 넓은 영역에서 통한다. '한국의 톰 하디'라는 수식은 그 변화를 설명하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