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달팽이는 등 뒤에 자기 집 한 채씩은 가진 행복한 존재다. 하지만 달팽이 중 유독 ‘민달팽이’는 집이 없다. 이 때문에 집이 없는 2030세대를 일컫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우리 사회의 민달팽이들이라면 대학생,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 등 청년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에게 내집 마련은 현실적으로 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이런 가운데 이들에게 '따뜻한 방'을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건 이가 있다.
주인공은 2011년 대학 4학년 때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의 기숙사 마련과 주거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며 뜻이 맞는 친구들과 ‘민달팽이유니온’이란 단체를 만든 임경지 위원장(27)이다.
임 위원장은 “2008년 대학에 입학해 광우병 촛불집회, 이듬해 용산사태 등을 경험하면서 국가 폭력이 얼마나 거대하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지 알았다”며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해 40만~50만원의 월세를 마련하느라 교육받을 권리까지 박탈당하는 현실이 너무나 개탄스러웠다”고 회상했다.
1년간은 연세대학교 안에서만 활동하다 2012년 서대문·마포구에 있는 홍익대, 서강대, 이화여대와 연합해 ‘대학생 주거권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3년부터는 서울시내 전체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2013년 졸업과 동시에 진로를 고민하다 청년주거문제를 연구해보고자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에 입사했다가 1년 만에 그만두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졸업 후 일반회사 취직도 생각해봤지만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 어려운 길이지만 이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후 2014년 3월 청년들이 주체가 돼 출자금 355만원, 조합원 43명의 협동조합을 만들어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조합원들끼리 모여 수요가 충분한 원룸 건물을 통째로 빌린 후 장기계약을 해서 임대료를 시세의 75% 정도로 낮춘다는 계산에서 출발했다.
첫번째 결실이 지난해 5월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출자한 8200만원의 출자금으로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전용 40㎡ 빌라 2채를 장기 임대해 주변 시세 대비 60% 정도에 조합원들에게 임대했다. 이 주택은 민달팽이 청년들의 단단한 울타리가 돼주라는 의미로 ‘달팽이집’으로 명명했다. 달팽이집은 현재 2호까지 완료됐고 조만간 3호도 공급할 예정이다.
임 위원장은 “달팽이집 형태는 입주자 간의 공동체성을 높이고 쾌적한 공동생활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며 “3개월간 직접 살아보면서 어떤 점이 불편한지, 어떤 점을 개선할지 꼼꼼히 분석하고 난 후 공급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집보샘’ 서비스도 시작했다. 중앙정부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주거복지서비스를 안내하고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사용하는 인증된 공인중개사를 연결해 자취나 하숙을 계약하는 것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상담을 신청한 학생들이 집을 보러 다닐 때와 계약할 때 동행서비스도 제공한다.
그는 “부동산 임대차시장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성 등으로 인해 대학생들은 임대시장에서 언제나 ‘을’의 입장”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소득보다는 자산, 그중에서도 부동산자산이 사회·정치적 계급을 나타낸다는 ‘부동산 계급사회’에 맞서 청년들에게 ‘주거사다리’를 제공하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