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용산 초고가주택 단지 앞에 토지보상비 약 4600억원을 들여 조성하려 했던 '한남근린공원' 관련 예산 확보를 보류했다. 내년 예산에 1800억원의 보상비 재원을 마련하려던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공시지가 상승 여파로 보상비가 천문학적 수준으로 치솟자 오세훈 시장이 사업 우선순위를 미룬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2일 시에 따르면 전일 확정 발표한 2022년도 예산안에 한남근린공원 관련 토지 보상비가 포함되지 않았다.
시는 원래 내년 예산에서 토지 보상액 일부인 1800억원을 확보한 뒤, 공원 조성계획이 확정되면 도시공원일몰제가 발효되는 2025년 6월 25일 안에 보상금의 2/3를 지급하고, 이후 2년 간 잔금을 치르는 자금조달 스케줄을 잡았다.
이 같은 계획은 지난해 5월 박원순 전 시장 재임 시기, 도시공원일몰제 시행을 앞두고 해당 부지를 공원 용도로 지정하면서 비롯됐다.
오 시장은 취임 직후인 올해 5월 이 내용을 보고받고, 일단 공원조성 계획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공시지가 상승으로 보상액이 치솟자 일단 내년 상반기 예정된 기본계획 확정 전까지 사업 속도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8월 시가 시의회에 보고한 한남근린공원 사업계획에 따르면 해당 부지(한남동 670일대 34필지, 면적 2만8319㎡) 총사업비는 4653억원으로 책정됐다. 토지 보상비가 4614억원으로 전체 99.1%를 차지하며, 나머지 39억원이 시설 공사비 등 사업비다.
6월 시의회에 보고된 총사업비 3889억원보다 764억원 급증한 것이다. 이와 관련 서울시 관계자는 "기존 토지 보상액 3850억원은 2019년 공시지가 기준이며, 가장 최근 보고된 4614억원의 보상비는 올해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다시 계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난 2년 간 공시지가 상승률이 한 번에 반영돼 보상비 증가폭이 커졌다는 의미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한남근린공원 부지 개별 공시지가는 2019년 3.3㎡당 1455만원에서 2021년 3.3㎡ 1799만원으로 23.6% 상승했다.
서울시는 기존 토지 보상 사례를 검토해 해당 부지 보상액을 공시지가 산출액의 3.5배로 책정했지만 실제 토지 보상은 보상 공고일 기준으로 확정돼 사업이 지연될수록 최종 보상액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시는 이번 조치가 당장 사업 전면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여론 향방과 올해 10월부터 시작한 한남근린공원 기본계획 용역 결과에 따라 백지화 수순을 밟을 여지도 남아있다.
시 관계자는 "일단 공원조성 계획은 유지한 상태에서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기본계획 확정 이후 관련 예산을 편성키로 결정한 것"이라며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는 공원 조성 적정성 여부도 함께 검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억원의 예산을 들인 기본계획 용역은 내년 6월경 완료될 예정이다.
실무진들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지만, 오 시장이 신중론으로 돌아선 데다 최근 시의회 내부에서도 막대한 예산 투입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 점차 공원조성 폐지론에도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송재혁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노원6)은 한남근린공원 토지 보상비 급증 문제를 지적하면서 "한 개 도시공원의 가치를 금액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1000만 서울 시민들이 공평한 도시공원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의 예산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시는 앞서 대한한공이 보유한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부지를 매입했지만, 단기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예산이 부족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보상비를 대납하는 대신 시유지인 강남구 삼성동 서울의료원 부지 일부를 제공키로 했다.
오 시장이 내년 용역 결과를 검토한 뒤 한남근린공원 조성 계획을 폐기하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지만, 이럴 경우 기존 해당 부지 용도(1종 일반주거지역)상 저층 고급주택 개발이 가능해져 땅 소유주인 부영주택에 대한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오 시장은 최근 주변에 이런 고민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기본계획 결과, 오 시장의 내년 재선 성공 여부에 따라 이 문제가 판가름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원안대로 공원조성을 촉구하는 시민단체는 이번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내년 예산에 토지보상 예산이 빠진 것은 그간 시가 한남공원 조성을 위해 부영과 소송전도 불사했다는 점에서 황당한 결정"이라며 "한남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신속한 토지보상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원조성 반대 여론도 적지 않아 향후 관련 논쟁이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