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변 공공재개발 사업지에서 주민대표회의 위원장의 연봉을 2억4000만원으로 책정하는 등 사업시행자인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와 사전 협의되지 않은 안건이 의결되면서 토지등소유자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주민 협조 없이는 사업 추진이 어려운 만큼 주민 자치 영역과 공공시행자의 권한을 조율할 별도 지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본동 공공재개발 주민대표회의는 지난 25일 첫 주민총회를 열고 주민대표회의 운영비 예산안과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계약 취소 요청안 등 7개 안건을 모두 가결했다.
문제는 이날 의결된 안건 상당수가 SH와 사전에 협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운영비 예산안에는 주민대표회의 위원장의 월 급여를 1500만원으로 책정하고 상여금 400%를 별도로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급여와 상여금을 합친 연간 보수는 2억4000만원이다. 이는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가 조합원 1000명 이상 정비사업장에 권고한 조합장 월 급여 528만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SH가 선정한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와의 계약 취소를 요청하는 안건과 SH의 사업 집행 과정에서 주민대표회의의 관여 범위를 확대하는 운영규정 개정안도 함께 통과됐다.
본동 공공재개발의 사업 집행과 계약에 관한 권한은 사업시행자인 SH가 갖는다. 주민대표회의는 토지등소유자의 의견을 수렴해 사업시행자와 협의하는 기구다. 조합이 사업시행자가 되는 민간 정비사업과 달리 공공재개발은 SH 등 공공시행자가 사업 전반을 맡고 주민대표회의가 주민 의견을 전달하는 구조다.
SH는 총회에 앞선 지난 8일 주민대표회의에 공문을 보내 사업시행자의 권한 범위를 안내했다.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와 설계자 등 협력업체 선정·계약, 공사비 검증, 시공자 선정 절차 등 사업 집행 전반의 권한과 책임은 사업시행자인 SH에 있다는 내용이다. SH와 사전 협의 없이 의결한 안건은 법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으며 실제 사업에도 반영할 수 없다는 점도 명시했다.
SH 관계자는 "주민총회에 상정된 내용은 SH와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사안"이라며 "현재 사업시행 약정 체결 전 단계인 만큼 이번에 의결된 안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주민총회 의결이 SH를 법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아니어서 실제 사업 반영 여부는 SH의 판단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SH가 사업시행자로 지정되면 사업을 시행할 권한은 SH에 있고 주민대표회의는 시공자 선정 등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며 "SH는 주민 의결 내용을 최대한 검토해 사업시행계획을 수립해야 하지만 사업의 적절성 등을 따져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분은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일부 토지등소유자는 SH와 관할 지자체가 주민대표회의 운영을 보다 적극적으로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민대표회의는 사업 과정에서 주민 동의서를 확보하고 토지등소유자의 협조를 끌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주민 반발이 커질 경우 SH 역시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본동구역 토지등소유자는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일부 수익을 포기하고 공공재개발 방식을 택했는데, SH와 협의되지 않은 안건 의결로 사업이 지연되면 분담금 증가 등 부담이 소유주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며 "SH가 사업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견제해야 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주민대표회의는 주민 의견을 대변하고 사업에 필요한 협조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양측의 간극이 지나치게 커지면 사업 추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일부 주민의 반대 의견까지 반영하고 갈등을 원만하게 해소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원장 보수의 일정 범위를 정하거나 사업시행 약정 체결 과정에서 주민대표회의에 배분할 권한을 구체화하는 등의 지침이 마련되면 갈등을 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