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는 금융감독원이 2010년 8월 검사와 제재를 마친 사건이었다. 금감원은 당시 10개 은행에 ‘기관주의’를 줬다. 72명의 은행 임직원에게는 ‘감봉’, ‘주의’ 등의 조치를 내렸다.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기 전 금감원이 ‘경징계’하는 선에서 매듭을 지은 셈이다. 키코 피해 기업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반발했다.
그로부터 10년. 키코는 다시 쟁점이 됐다. ‘발화점’은 정치권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017년 키코 문제를 공식 거론했다. 최순실의 하나은행 인사개입, 신한금융의 남산 3억원 의혹과 더불어 ‘금융3대 적폐’로 키코를 지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 금융위원장 직속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는 “키코 재조사와 피해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라”고 권고했다. 혁신위는 전원 민간위원으로 구성됐는데 당시 위원장이 다름 아닌 윤석헌 현 금감원장이었다.
금융위는 키코 재조사에 부정적이었으나 혁신위 권고와 정치권 압박 등에 밀려 금감원과 공동으로 이행방안 마련에 나섰다. 지난해 5월 초 금융위·금감원은 키코 피해 기업으로 구성된 키코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만나 피해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방안과 더불어 분쟁조정을 약속했다. 공대위는 참여 기업 중 피해 입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4개 기업을 골라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키코 사건이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안건으로 올라가 ‘세기의 분쟁조정’으로 조명받기까지는 윤석헌 금감원장 역할이 컸다. 윤 원장은 금융위가 공대위에 분쟁조정을 약속한 직후인 지난해 5월 금감원장에 취임했다. 2017년 혁신위원장이었을 당시만 해도 윤 원장이 금감원 수장이 되리라고 예측하기 힘들었다. “키코는 사기”라는 시각을 갖고 있던 윤 원장은 금감원장 취임 후 키코 분쟁조정 전담팀을 꾸렸다.
키코 분조위를 한달여 앞둔 지난달 10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키코 사건이 분쟁조정 대상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발언해 공대위가 발칵 뒤집어졌다. 공대위는 “위원장 직속 혁신위 권고로 분쟁조정이 시작된 것”이라며 금융위가 있는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시위를 벌였다. 키코 사건에 대해 금융위와 금감원 시각이 달라 양 기관의 갈등이 촉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이달 중순 금감원 분조위에 키코 안건이 올라간다. 분조위가 은행에 일정비율 손해배상을 권고할 경우 은행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심사지만 별개로 금감원 책임론도 불거진다.
2017년 혁신위원장을 맡은 윤 원장은 키코 권고안을 직접 작성하면서 “키코 사태는 감독당국이 금융회사 이익을 소비자보호에 우선해 처리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2010년 솜방망이 제재로 키코 문제를 덮기에 바빴던 금감원이 10년도 지난 문제를 꺼냈다면 스스로 반성과 사과를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