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레고랜드發 부실' 돈도, 신뢰도 잃었다

김남이 기자
2022.10.24 05:12
/사진=뉴스1

금융업의 본질은 신뢰다. '맡겨놓은 돈을 언제든 찾을 수 있다', '돈을 빌려주면 갚는다'라는 믿음이 없다면 금융 거래는 이뤄질 수 없다. 각종 담보와 보증, 심사는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부수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믿음이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원도가 '돈을 갚겠다'는 채무보증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레고랜드 사업주체인 GJC(강원도중도개발공사)가 자금조달을 위해 2050억원 규모의 ABCP(유동화기업어음)를 발행하고, 강원도가 보증을 섰다.

신뢰도가 높은 지방자치단체가 보증을 서면서 높은 신용등급(A1)을 받았다. 하지만 강원도가 보증 의무를 불이행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지자체도 못 갚는 상황'이라는 심리적 불안이 퍼졌다. 상환되지 않은 단기금융시장은 물론 회사채 등 전체 채권 시장까지 불안은 번졌다.

단기금융시장에 자금 공급이 급격히 줄었고, 우량 회사채도 팔리지 않기 시작했다. 채권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금리는 더 빠르게 올랐다. 가뜩이나 기준금리 상승으로 높았던 채권 금리는 레고랜드 사태로 더 뛰었다. 기업의 부담은 더 커졌다.

시중의 자금은 은행 예금과 은행채로 쏠리기 시작했다. 믿을 만한 곳에만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참여자들의 과도한 쏠림 현상은 시장의 신뢰가 부족하면 발생하는 현상 중에 하나다. 강원도는 뒤늦게 내년 1월 29일까지 상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금융시장의 혼란이 모두 강원도의 책임은 아니다. 이전부터 단기금융과 회사채 시장은 살얼음을 걷고 있었다. '레고랜드 사태'는 겨우 버티던 얼음판을 깨는 역할을 한 셈이다. 불안을 틈타 확인되지 않는 소문도 번졌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대책도 아쉬운 점이다. 강원도가 법원에 회생신청을 하던 날 금융당국 관계자에게 채권안정시장 펀드의 재가동을 문의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아직 그 정도 상황은 아니다'였다. 하지만 채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정부는 채안펀드를 포함해 '50조원+α(알파)'의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한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시장에서는 '돈도 잃고, 신뢰도 잃었다'라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온다. 한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세우기에는 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는 시장의 예상을 넘는 과감한 선제적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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