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式 소비자보호[우보세]

권화순 기자
2025.11.06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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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임직원들이 29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한 임직원 결의대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25.09.29. jhope@newsis.com /사진=정병혁

"자율배상 하면 제재·과징금을 경감한다고 했는데, 이제와서 자율배상했다는 이유로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며 발목 잡힌다면 앞으로 금융당국의 말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

최근 만난 금융권 관계자는 이런 하소연을 했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홍콩 ELS를 판매한 은행 5곳은 지난해 1조3000억원의 자율배상을 했다. 당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책임을 인정하고 소비자 및 이해관계자에 대한 조치를 한다면 제재·과징금에서 감경요소로 삼는 게 당연하다"고 언급한 직후 사상최대 규모의 배상이 속전속결 이뤄졌다.

금감원은 홍콩 ELS 판매 과정에서 설명의무·적합성(적정성)의무 위반이 있었다며 손실을 본 17만명의 투자자 모두에 40% 전후의 자율배상을 권고했다. 은행들은 묻지도, 따지지 않고 심지어 ELS 투자경험이 20회가 넘어도 일괄 배상했다. 법적으로 위반을 인정했다기 보다 자율배상을 통한 소비자 구제를 우선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당국의 감경 약속이 크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그로부터 1년6개월이 흘러 홍콩 ELS 제재 결과가 곧 나온다. 은행들은 과거의 배상 결정이 이제와서 "잘못을 자인했다"는 식으로 해석될까봐 걱정한다. 홍콩 ELS는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이후 가장 큰 제재 사례인데다 이찬진 금감원장 취임 이후 소비자 관련 첫 제재라는 점에서 자칫 '본보기' 케이스가 될 것이란 염려도 없지 않다.

과징금, 과태료 부과는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금소법상 과징금 부과 기준을 '부당 이익'이 아닌 '투자원금'(18조원)으로 해석해 제재 수준에 따른 후폭풍이 거셀 수 있다. 과징금은 은행 보통주 자본비율 산정시 10년간 반영해야 한다. 과태료는 더 문제다. 은행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7만건에 모두 자율배상을 한 상황에서 '건별' 과태료 부과시 과징금보다 금액이 더 크게 나온다. 행정제재(과태료)가 과징금보다 더 센 기현상이 벌어질 수 있어 "징벌적보다 더한 약탈적"이란 말까지 나오는 판이다.

최근 대법원 선고가 난 즉시연금 분쟁과도 비교해볼 만하다. 즉시연금도 홍콩 ELS처럼 은행 고객에 대부분 팔렸다. 보험사들은 분쟁조정위원회 권고를 거부하고 7년간 소송전을 벌였다. 대법원은 "보험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면서도 "설명의무를 충분히 다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모순적인 판단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분조위 결정을 거부한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 의무가 사라진 반면 선제적으로 자율배상한 은행은 제재·과징금에 과태료 부과 위기까지 맞았다.

이 원장은 사후수습 보다 상품설계·판매단계의 사전예방적 소비자보호 전환을 강조했다. 대법원 결정을 번복하고 키코(KIKO) 피해자 배상이란 무리수를 던진 윤석헌 전 금감원장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피해를 주장하는 소비자도 있지만 침묵하는 다수의 소비자도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홍콩 ELS 과징금은 금융회사뿐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의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온다. 사전예방적 소비자보호 전환에는 '소비자 책임성'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권화순 금융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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