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패션업계에 '열정페이'만 있는 건 아니다

박계현 기자
2015.04.29 07:00

지난 23일 국회에서 ‘패션디자인업계 열정페이 문제 해결을 위한 노사공동선언 및 인턴견습노동의 사회적가이드라인 합의를 위한 정책공청회’가 열렸다. 무급 또는 작은 월급을 주면서 인턴이나 견습사원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이른바 ‘열정페이’ 문제의 해법을 고민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날 고용인측을 대표해 패션노조·아르바이트노조·청년유니온 등 3개 청년단체가, 사용자 측을 대표해선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가 참석했다. 청년단체들은 패션디자인업계 노동자들의 위임을 받은 정식 노조가 아니었고, 한국패션디자인연합회 역시 연평균 매출 12억원, 평균종업원수 8명 수준의 영세한 브랜드 디자이너 350여명이 모인 직능단체에 불과했다.

하지만 패션디자인업계 노사의 대표성을 갖지 못한 이들 단체가 열정페이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선 것은 최저임금, 근로기준법도 지키지 못하는 열악한 사업장에서 열정을 담보로 노동을 착취당하는 청년들의 처지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국내 패션디자인산업은 연간 40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수입 브랜드 등을 제외하면 열정페이 논란의 진원지인 국내 디자이너브랜드의 연간 매출규모는 42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대기업을 제외한 종사자수도 약 3000여명 수준이다.

문제는 매년 전국의 패션디자인 계열학과(4년제 기준)에선 약 3400명의 졸업생이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다. 일자리수에 비해 노동력이 지나칠 정도로 과잉 공급되다보니 노동조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또한 기성 브랜드 디자이너 뿐 아니라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한 젊은 디자이너들 역시 노동법 등에 대한 무지와 도제식 업계 관행 등으로 인해 다른 청년들을 착취하는 '슬픈 상황'도 빈발하고 있다고 이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문제 해결은 일단 양 측이 테이블에 앉는 데서 출발한다. 이날 패션디자인분야 단체들은 “현행 노동법을 준수하고, 인턴·견습 일자리가 본래 취지에 맞게 활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노사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등도 구체적인 실태조사를 위한 예산을 마련하는 등 이들의 노력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패션디자인분야 노사 단체들이 이날 내딛은 작은 발자국이 열정페이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다른 분야 산업에도 훌륭한 선례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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