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끓기 바로 직전 임계점에 온 듯하다. 벤처 활성화 정책을 좀 더 과감히 실행해야 한다."
정 준 벤처기업협회장(52)은 "정부의 벤처 활성화 정책 덕분에 2000년대 이후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최근 제2의 벤처붐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다만 현재는 물이 끓기 전 기포가 올라오는 단계로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부가 단기간 세수 감소를 감수하더라도 좀 더 과감한 지원책을 내놓아야 할 때"라고 17일 밝혔다.
정 회장은 "국내 굴지 기업에 다니는 직원과 대학 교수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벤처 창업에 뛰어드는 2000년대 초 벤처붐 현상이 재현되는 양상"이라며 "몇 년전까지만 해도 찾아볼 수 없는 대표적인 벤처붐 조짐"이라고 말했다.
그는 "벤처기업 창업에 나서거나 직장 선호도가 높으려면 미래의 위험보다 기대이익이 커야 한다"며 "결국 벤처기업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에 대한 과감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 실패 위험을 줄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지난해 판교에 위치한 도로공사 부지와 그린벨트를 풀어 제2 판교테크노밸리를 조성키로 발표했던 '판교창조경제밸리' 계획이 당초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면 혁신성과 벤처 육성 역량을 가진 업체를 선별할 수 있는 별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정부는 그린벨트 부지 동측 6만㎡에 선도 벤처기업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토지를 공급해 복합건물을 조성, 이 중 70%는 선도 벤처기업의 업무공간, 30%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육성공간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정 회장은 "판교창조경제밸리가 판교테크노밸리처럼 기업 사옥만 들어선 곳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스타트업과 후배 벤처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가진 업체를 선별해 부지를 분양해야 한다"며 "단순히 사업성과 분양성을 중심으로 부지 조성을 실시할 경우 벤처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당초 취지가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를 위해선 분양시 입주기업 심사기구에 벤처기업협회 등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담=송정렬 중견중소기업부장, 정리=전병윤 기자, 사진=김창현 기자]
-정부가 최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민간자본의 벤처투자 유입 활성화 등을 골자로 한 벤처 활성화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현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 중 주요한 것 하나가 벤처기업 창업과 벤처투자 활성화입니다. 꾸준히 정책을 펼친 결과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 세계적인 IT(정보기술) 거품이 꺼지면서 국내 벤처산업도 침체기에 들어섰는데 다시 불씨를 살렸다는 건 매우 큰 의미죠. 다만 불씨에 불이 확 붙을 수 있도록 정부가 파격적인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비교하자면 물이 끓기 위해 온도가 100도까지 올라가야하는 데 지금은 기포가 올라오는 90도 정도라고 할까요. 끓기 위한 임계점을 넘느냐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영화가 10~20년 전보다 크게 발전한 원동력은 정부 지원이었다고 봅니다. 정부의 벤처투자금인 모태펀드가 꾸준히 국내 영화산업의 마중물 투자를 해왔고 민간자본을 육성해 영화의 질적·양적 성장을 이끈거죠. 모태펀드 지원을 받은 창업투자회사에 기준수익률을 낮춰져 수익이 낮아도 과감히 투자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겁니다. 꾸준한 정부 지원 정책 효과로 1000만 관객 영화가 나오고 국제 영화제에서도 경쟁력을 가진 영화 나오듯 벤처업계도 스타 기업이 이어질 수 있도록 꾸준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추가로 마련해야 할 정책이 있다면.
▶모든 산업이 그렇듯 결국은 좋은 인력이 산업에 모여야 경쟁력이 커집니다. 인재가 벤처 창업에 뛰어들고 꼭 우수한 인력이 아니더라도 의지를 가진 청년이 벤처업계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거죠. 사실 우리나라 정책이 부재해서 효과가 미진한 건 없습니다. 미국, 유럽에 있는 정책은 우리나라에도 존재합니다. 크라우드펀딩과 같은 벤처기업의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도 우여곡절 끝에 우리나라에도 도입됐습니다.
중요한 건 법 자체의 유무는 아니라고 봅니다. 사회적 구조와 분위기가 벤처산업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젊은이들이 벤처기업을 봤을 때 '나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마음 먹기 어렵다는 겁니다. 리스크대비 기대이익이 작은 거죠. 실패 위험이 큰 사회이므로 안정적인 성향의 길을 택하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기업가 정신을 강조해도 효과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벤처산업 종사자는 배우자로서 인기가 없는 겁니다.
-정부가 창업자 연대보증과 같은 관행을 개선했는데요.
▶공공기관의 보증을 받더라도 창업자에 연대보증을 요구하기 때문에 망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습니다. 벤처투자시장이 아직 미미한 상황에서는 보증이나 대출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 창업자가 보증을 서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폐업이 곧 인생 실패를 의미합니다. 미국처럼 창업 실패가 하나의 이력으로 통하는 사회하고는 전혀 딴판인 겁니다.
이런 문제가 심각하자 정부가 기술보증기금과 같은 공공기관의 보증시 설립 5년 미만 기업에 대해선 창업자 연대보증을 전면 면제한 건 정말 과감한 조치입니다. 장기적으로 적지 않은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실제 요즘 누가 창업하는지를 보면 의미있는 변화가 감지됩니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나왔거나 교수를 박차고 뛰어드는 경우를 종종 목격합니다. 2000년 초반 벤처붐과 같은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앞서 말 한대로 벤처에 대한 사회적인 우선순위가 바꾸진 않고 있습니다. 실제 벤처업계에서는 부모의 재력이 있어야 스타트업 창업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창업했다가 망하더라도 타격이 없기 때문이죠. 국가의 정책은 모든 이에게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합니다. 창업 기회마저 부모의 재력에 따라 달라지는 건 곤란합니다.
-벤처산업 활성화를 위해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사업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벤처기업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벤처생태계를 활성화하는데 노력했습니다. 정부에 우수인재 영입을 위한 스톡옵션제 개선, M&A(인수·합병) 확산 위한 세제지원, 연대보증 폐지, 기업가정신 조기교육, 크라우드펀딩 및 엔젤투자 확산을 위한 제도개선 등이 소기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합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못지않은 스타트업 인프라 구축을 위해 판교창조경제밸리 내 벤처캠퍼스 조성을 추진해 정부 정책에 반영되도록 노력했습니다. 벤처캠퍼스 선도벤처기업이 직접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공간으로 분양받은 부지의 30%를 제공하는 것으로 벤처기업협회가 제안해 정부가 수용한 겁니다. 이곳에서는 개방적 혁신에 익숙한 초기 벤처기업이 입주해 선도 벤처기업과 스타트업 간, 또는 스타트업 간 상호 종적·횡적 교류를 통해 순수 민간형 혁신 생태계를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과거 테헤란밸리는 높은 임대료 문제와 한정된 공간, 현재 판교테크노밸리는 대형기업 위주의 집적으로 인한 소통과 교류의 한계 등이 단점으로 지적돼 왔습니다. 다만 벤처캠퍼스 조성과정에서 사업적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형평성과 재무적 관점을 강조해 애초의 목적이 훼손되지 않아야 합니다. 단지 산업단지 1개를 조성하는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 벤처 생태계에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단순히 공간만 제공한다고 해서 당초 취지가 구현되는 건 아닙니다. 따라서 입주기업 심사과정에서 벤처기업협회 등이 혁신성과 의지를 가진 업체를 선별할 수 있도록 심사위 등에 참여해야 합니다.
-내년 일몰을 앞둔 벤처기업특별법과 관련해 재연장을 넘어 새로운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옵니다.
▶중소기업청이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협회도 업계 의견을 수렴해 연구진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벤처기업특별법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데 모두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현행 벤처기업 지원 중심 법률에서 기업 활동 인프라를 조성하고 벤처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현재 한시법 체제의 일몰조항을 삭제해 영구법 형태 특별법으로 개편하고 벤처기업의 글로벌시장 진출 지원제도를 강화해야 합니다.
-최근 팁스(민간주도형 기술창업 지원사업) 운영사인 더벤처스 대표의 구속수사 등 문제가 불거졌는데요.
▶팁스의 본질은 지원 대상 스타트업 선정을 정부가 주도한 심사위원회가 아니라 민간이 투자한 걸 존중해서 지원하겠다는 겁니다. 대신 정부는 팁스 운영사를 평가하고 고르는 최소한의 개입만 하고 민간 자율을 보장해 정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는 거죠. 팁스 사태 이후 부족했던 관리감독 기능을 강화하려는 정부 의도는 맞지만 혹시 규제를 강화하려는 방향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팁스 제도가 꾸준히 실행되면서 우수한 스타트업이 생기고 성공사례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일부 부작용을 바로잡기 위해 전체를 훼손하는 우를 범해선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