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눈 돌리는 기업들…결국 '코스닥 체질개선'에 달렸다

고석용 기자, 남미래 기자, 김세관 기자
2025.12.03 08:30

[MT리포트]출구 막힌 벤처투자(下)

[편집자주] 벤처생태계를 구성하는 선순환 고리는 '창업-투자-성장-회수-재투자'다. 스타트업에 투자했던 돈이 돌아 나와야 또 다른 기업에 투자가 이뤄지고 산업 근간을 뒤바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탄생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벤처생태계는 '회수' 단계에서 꽉 막혀 있다. 특히 주요 회수 수단인 코스닥 IPO(기업공개) 시장의 병목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지목된다. 이재명 정부가 그리는 '제3의 벤처붐'의 핵심키가 될 벤처투자 회수시장을 진단한다.

"코스닥에선 답 없다"…해외로 눈 돌리고, IPO 포기하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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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1일(현지시간) 쿠팡 경영진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기념 ‘오프닝 벨’을 울렸다. 이날 행사에는 고객과 배송직원, 오픈마켓 셀러 등도 온라인으로 함께 했다. /AP=뉴시스

국내 증시 IPO(기업공개) 병목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상장을 연기·포기하거나 해외 증시로 눈을 돌리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신기술·신산업에 도전하는 벤처·스타트업에 증시 입성 기회를 주는 각종 특례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사실상 '희망고문'에 가깝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일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가 최근 5년간(2020~2024년) 코스닥 IPO 예비심사 현황을 분석했더니 연평균 94곳(스팩 제외)이 심사를 신청했고 이중 24%인 22.6곳은 중도에 심사를 철회했다. 예비심사 신청기업 4곳 중 1곳은 심사를 자진 철회한 셈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102곳이 심사를 신청했지만 34곳이 서류를 자진 회수해 심사 철회율은 33.3%에 달했다.

올 들어 코스피 등 국내 증시가 활황이지만 코스닥 IPO 예비심사를 신청하는 기업 수가 예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든 것도 벤처·스타트업들의 녹록지 않은 증시 입성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올 1월부터 11월20일까지 코스닥 IPO 예비심사를 신청한 기업 수는 71곳이다. 연말까지 신청 기업이 더 늘어난다고 가정해도 최근 5년 평균(94곳)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아예 해외 증시로 눈을 돌리는 업체들도 있다. 국내 대표 AI(인공지는) 반도체 기업으로 꼽히는 퓨리오사AI는 미국 나스닥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 비바리퍼블리카(토스)·무신사·야놀자 등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들은 이미 나스닥 IPO로 상장의 방향키를 틀었다. 다쓰테크·LCM에너지솔루션 등은 캐나다, 올거나이즈는 일본 증시 상장을 각각 추진하고 있다.

코스닥 예비심사 신청 및 철회 현황/그래픽=윤선정

국내 증시 상장을 연기·포기하거나 해외 증시 상장을 검토하는 업체들이 많아진 배경에는 깐깐한 심사 기준이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제대로 기술평가는 하지 않고 피어그룹과 실적만 비교하는 한국에서 상장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며 "심사에서 거절당하면 처음부터 상장을 다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 사정이 어려운 기업 입장에선 피가 마른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IPO 담당자도 "파두 사태(부풀려진 실적을 앞세워 상장해 시장 혼란을 불러온 사건) 이후 기술특례 심사 절차가 더 깐깐해졌다"며 "신기술이나 사업모델 성장 등으로 상장을 하려면 거래소 측에서 주관사에 다양한 조건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코스닥 기술특례와 관련 상장 규정을 바꾸거나 허들을 높인 적이 없다"며 "공식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다.

코스닥 IPO 심사가 실적 위주로 돌아가면서 벤처·스타트업들의 체질 약화까지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비심사를 자진 철회한 한 기업 관계자는 "상장 심사요건을 맞추려고 무리해서 실적을 내려다 R&D(연구개발) 비용을 줄였는데 이 과정에서 회사 전체가 휘청이는 위기를 겪었다"며 "벤처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상장 심사를 다시는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 외국계 벤처캐피탈(VC) 임원은 "한국은 세계에서 손 꼽힐 정도로 훌륭한 증시 인프라인 코스닥을 만들어 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벤처산업 육성 정책이 빛을 발하려면 코스피 지수 5000보다 더 중요한 건 코스닥 지수를 3000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벤처투자 선순환 퍼즐 완성...결국 '코스닥 체질개선'에 달렸다

국내 주식시장 투자자별 거래대금 현황/그래픽=윤선정

IPO(기업공개)를 통한 회수 의존도가 높은 국내 벤처생태계에서 투자 선순환 고리를 만들려면 코스닥 시장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개인투자자들의 단타 놀이터가 아니라 기관·외국인 투자자들이 모여드는 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1일 한국거래소(이하 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거래소는 이르면 이달 중 국내 유망 중소·벤처기업과 스타트업들이 포진해 있는 AI(인공지능)와 항공우주, 바이오, 반도체, 자동차, 방산업종 특화 기술특례상장 질적 심사기준을 마련한다.

거래소 내에서는 'ABCD 육성방안'으로 불린다. 인공지능/항공우주( AI/Aerospace), 바이오(Bio), 반도체/자동차(Chips/Cars), 방산(Defence) 업종에서 머리글자를 따서 이름 지었다. 특정 종목에 편중된 기술특례상장 흐름을 유연화하고, 유망한 기업에 특화된 심사 단계를 적용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가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진 코스닥 활성화 정책에도 내용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코스닥 활성화 정책으로는 △코스닥 벤처펀드 소득공제 한도 상향 △연기금 코스닥 비중 3%→5% 전후 확대 △150조원 국민성장펀드 활용 △IMA(종합투자계좌) 등을 통한 증권사 모험자본 투입 △세제 인센티브 확대 △코스닥 IPO 구조 재편 등이 거론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지금보다 유동성이 더 투입되고 플레이어가 많아져야 코스닥에 진출한 그리고 진출하는 기업들의 투자 수요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도 "코스닥 시총의 10%인 약 30조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어 IPO와 유상증자 등에 투입하는 등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며 "개인이 아닌 기관투자자 중심의 생태계가 형성돼야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들이 시장에서 외면받는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스닥은 개인투자자 쏠림현상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코스닥의 개인 거래 비중은 79.2%에 달했다. 외국인 비중은 15.1%, 기관·법인 비중은 5.7%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기관·법인 투자자 비중이 19.2%,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27.3%에 달했다.

최근 정부의 정책적 노력으로 코스닥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은 코스닥에서 6880억원을 순매수했다.

증권업계에서도 코스닥에 대한 매수 포지션을 권장하는 분위기다. 김종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코스닥 영업이익이 성장하는 가운데, 정부 주도 모태펀드 자금이 벤처펀드 등으로 유입되고, 국민성장펀드 투자도 집행될 것"이라며 "코스닥 시가총액이 100조원 증가한다면, 지수는 1100포인트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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