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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특례상장이라고 해서 기술만 좋으면 합격시켜 주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지금 시장에서 기술력은 심사 테이블에 앉기 위한 '입장권'일 뿐입니다. 실제 당락을 결정하는 핵심은 '경영 투명성'과 '사업의 본질'입니다."
한국거래소(KRX)에서만 28년을 근무하고 그중 17년을 상장 심사 현장에서 보낸 서상준 디코드 고문은 최근 기업공개(IPO) 시장을 이렇게 진단했다. 2007년 코스닥상장심사팀장으로서 국내 최초 외국기업 상장을 주관하기도 했던 그는 현재 바이오 전문 액셀러레이터(AC) 미리어드파트너스와 법무법인 디코드의 고문을 맡으며 초기기업의 IPO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서 고문은 파두 상장폐지 심사 사건 이후 수치적으로도 IPO 진입장벽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 70%대였던 기술특례상장 승인율이 최근 65% 수준, 지난해 상반기에는 체감상 50%대까지 낮아졌다"고 말했다. 기술평가를 통과한 기업이라도 거래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례가 늘었다.
그가 많은 스타트업이 간과하는 '숨은 뇌관'으로 꼽은 것은 경영 투명성이다. 서 고문은 "거래소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업의 계속성과 경영 투명성"이라며 "기술이나 실적이 아무리 뛰어나도 투명성에서 점수를 깎이면 높은 확률로 탈락한다"고 주의를 요했다.
가장 빈번한 탈락 사유는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간의 자금 거래다.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이 회삿돈을 급할 때 빌려 쓰고 나중에 메우는 가지급금·가수금 거래가 대표적이다. 서 고문은 "상장 심사 관점에서 이는 명백한 횡령·배임 이슈"라며 "나중에 돈을 갚았더라도 거래소는 이를 '내부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회사'로 규정한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50인룰' 위반도 잦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50인 이상의 투자자에게 신주를 발행하거나, 기발행 주식이 50인 이상에게 유통될 경우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발생한다. 서 고문은 "이를 놓치면 수억원의 과징금을 물게 되는 것은 물론 상장 일정 자체가 꼬인다"며 "많은 스타트업이 상장 직전에야 이 문제를 인지하고 뒤늦게 정정 절차를 밟는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서 고문은 일부 기업들이 매출을 늘리기 위해 본업이 아닌 사업에 도전하는 것은 상장 난이도를 더 높일 가능성이 있다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매출액이 없는 바이오 벤처들이 상장을 위해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 사업을 병행해 외형을 만드는 관행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알테오젠, 인벤티지랩처럼 기술의 확장성과 라이선스 아웃(L/O) 가능성을 중심으로 가치를 입증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신약 개발사가 당장 매출이 없으니 화장품이라도 팔아 외형을 갖추려 하지만 거래소는 해당 매출을 기술평가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며 "거래소는 오히려 '왜 본업인 신약 개발에 집중하지 않느냐'는 시각으로 가외 매출의 사업성을 더 집요하게 들여다보게 된다"고 말했다.
서 고문은 한국거래소 퇴사 이후 에이프릴바이오에서 부사장으로 상장을 이끌었다. 에이프릴바이오 역시 2020년까지만 하더라도 매출이 없는 전형적인 바이오벤처였다. 그러나 기술이전 계약 등으로 기술료를 받으면서 사업성을 입증했고 2022년 기술특례 상장을 통해 코스닥에 입성할 수 있었다.
서 고문은 성공적인 상장을 위해 이르면 시리즈B 단계부터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장 직전 급하게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는 벼락치기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거래소는 규정을 갖춰놨다는 것만으로 점수를 주지 않는다"라며 "내부통제 등 시스템이 실제로 잘 작동하는지 지켜보는 '워칭 피리어드(Watching Period)'를 최소 1년 이상 요구한다"고 말했다. 상장을 급하게 준비하면서 시스템을 갖추려다 보니 심사가 길어지거나 자진 철회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비용 부담이 있더라도 가능하면 시리즈B 단계부터 지정감사를 받고 CFO(최고재무책임자) 산하에 공시·IR 조직을 세팅해야 나중에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자본시장법과 거래소 규정 등 복잡한 변수가 많은 만큼 "창업자 스스로도 핵심 조항을 꾸준히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서 고문은 "상장은 출제자인 거래소의 의도를 알고 준비하면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시험과 같다"며 "기업들이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자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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