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뺏기면 어떡해" 벤처 키웠더니 자사주 강제소각?...창업가 한숨

김진현 기자, 송정현 기자
2026.04.02 05:00

[MT리포트]흔들리는 벤처 경영권(上)

[편집자주]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개정 상법으로 인해 벤처·스타트업계가 노심초사다. 기업가치 제고를 취지로 도입된 제도이지만 자금력이 약한 벤처·스타트업 입장에선 지분 유출 방지, 핵심 인재 영입 등에 활용할 실탄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지배구조 유지를 위한 보완책으로 꼽히는 복수의결권은 '그림의 떡'이다. 밸류업 정책의 역풍을 맞은 벤처·스타트업계 현실을 진단하고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한다.

주주환원 하려다 경영권 빼앗길라…고민 커지는 벤처 창업가

① '밸류업'의 역설, 벤처·스타트업 경영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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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결권 주식 도입 기업/그래픽=김지영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하는 내용의 개정 상법이 시행되면서 벤처·스타트업 창업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주주환원 등 기업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가 벤처·스타트업에는 경영권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복수의결권 제도가 꼽히지만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6일부터 시행된 개정 상법이 벤처·스타트업에 미치는 영향과 범위를 조사하고 있다. 대기업과 벤처·스타트업의 지배구조나 경영환경이 다른데 예외 없는 적용에 부작용이 크다는 여론이 커지자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본지보도:자사주 강제소각에 떨고 있는 벤처업계…중기부 구제책 마련한다]

개정 상법은 기업이 신규 매입한 자사주를 1년 이내, 기존 보유 자사주는 1년 6개월 이내에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장·비상장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기업에 일괄 적용하다 보니 자금력이 약한 벤처·스타트업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벤처·스타트업에 자사주는 '전략적 자산' 개념으로 통한다. 그동안 경영권 방어나 긴급 자금조달, 핵심 인재 영입 등 목적으로 자사주를 활용해 왔는데 소각이 의무화되면서 외부자본을 조달할 때마다 신주를 발행해야 해 창업가의 지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업계를 대변하는 벤처기업협회는 "주주가치 제고와 기업 투명성 강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벤처기업이 처한 특수한 경영환경을 감안할 때 보완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벤처·스타트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으론 복수의결권 제도가 유일한데 이마저도 유명무실하다. 복수의결권은 비상장 벤처·스타트업 창업주에 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2023년 11월 첫 시행됐다. 하지만 제도 시행 이후 이를 활용해 주식을 발행한 기업은 콜로세움코퍼레이션·하이리움산업 단 2곳 뿐이다.

복수의결권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것은 도입 요건이 까다로운데다 주주 동의를 받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어렵게 요건을 갖춰도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일반 보통주로 강제 전환되기 때문에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윤경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 교수는 "투자 실적 기준에 부합하더라도 주식 납입 과정에서 주주의 동의를 얻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며 "현 제도는 지나치게 제한적인 특수 상황만을 허용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활용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비상장 벤처 덮친 자사주 강제 소각...경영안정·인재확보 어쩌나

②벤처·스타트업 자사주는 '전략 자산'

자기주식 의무소각 제도 개요/그래픽=윤선정

벤처·스타트업계에서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 개정 상법이 특히 비상장사의 성장을 제약할 수 있는 조치로 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부족한 비상장 벤처·스타트업이 스케일업(외형확대) 과정에서 중요한 인재 유치와 경영 안정을 위해 유연하게 활용해왔던 자사주까지 강제 소각 대상이 되면서다.

◇"경영 안정·인재 확보 핵심 수단 뺏는 것"

비상장 벤처·스타트업은 대기업과의 인재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스톡옵션이나 성과조건부주식(RSU) 등 주식 기반 보상 시스템을 활용하는 게 보통이다. 이를 위해 자사주를 미리 확보해 두고, 우수 인재가 필요하거나 임직원 보상이 필요한 시점에 언제든 수시로 꺼내 활용해왔다. 하지만 개정 상법으로 자사주를 쌓아두지 못하고 강제로 비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개정 상법은 '임직원 보상' 목적의 자사주 소각은 의무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업계는 이를 행정적 제약 등 여러 이유로 비현실적이라고 평가한다. 매년 주주총회에서 이사 전원이 서명·날인한 자기주식 보유·처분계획서를 승인받아 공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 보상 설계의 유연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주주총회 승인이 불발될 경우 스톡옵션이나 RSU 부여가 취소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생긴다. 보상 수단으로서의 매력이 크게 떨어져 결국 스케일업 과정에서 중요한 인재 확보에 큰 어려움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한 번 임직원 보상 목적을 전제로 승인과 공시를 마치면 그 범위를 벗어난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공시를 하게 되면 자사주 소유 목적·보유기간·처분시기 등 구체 항목을 적시해야 하고, 이를 어기게 되면 결국 계획 위반 리스크로 이어진다는 것.

회사가 자사주를 다른 용도로 탄력적으로 활용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비상장 벤처·스타트업이 보유한 자사주는 단순히 임직원 보상에 그치지 않고 여러 용도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다른 회사를 인수할 때 현금 대신 거래 대가의 일부로 활용하거나, 전략적 투자자(SI)와의 제휴 과정에서 지분 협상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협회는 자사주가 이런 투자·협력 거래뿐 아니라 자금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을 때 이를 처분해 운영자금을 마련하는 등 비상시 대응 수단으로도 기능한다고 부연한다.

경영 안정 측면에서도 자사주는 핵심 수단이다. 스타트업은 성장 과정에서 공동창업자나 핵심 인력이 퇴사할 때 지분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콜옵션 행사 등의 방식으로 자사주를 취득한다. 지분이 제3자에게 넘어가 경영권이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고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소각이 의무화되면 회사가 내부적으로 흡수해 정리하던 방식이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지분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도 커진다.

김서영 하이리움산업 대표이사는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간신히 살아있는 스타트업이 많다. 갓난아기에게 여러 가지를 씌우면 그 아이가 어떻게 크겠나"라고 반문하며 "상법 개정을 통한 대기업의 주주환원 등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비상장사에까지 일률적으로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는 것은 스케일업(외형확장)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비상장 벤처·스타트업은 대기업과 달리 부족한 현금 여력 속에서 자사주를 매입한 경우가 적지 않다. 어렵게 취득한 자사주를 소각해야 하는 것은 스타트업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10년 전 회사가 어려웠을 때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RCPS 형태로 자금을 조달했다"며 "현재 상장을 준비 중인 과정에서 당시 주주들이 보통주 전환에 응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해당 물량을 3배 이상의 가격을 주고 취득했다"고 호소했다.

RCPS는 스타트업의 주요 자금 조달 수단이지만 증시 입성 전에는 보통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 반드시 의무 전환해야 하는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업계에서는 거래소가 개별 기업에 사실상 강하게 권고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이 보통주 전환을 거부하면 회사는 부득이하게 해당 물량을 취득해 정리해야 한다.

◇"벤처기업법 개정 통해 보완책 마련해야"

벤처기업협회는 현재 이러한 업계 의견을 반영해 벤처기업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앞서 업계는 상법 개정 과정에서 벤처·스타트업 예외조항을 삽입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개정 상법에 예외적으로 자사주를 보유하는 사유를 일부 담았으나 매년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 미봉책에 그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안으로 떠오른 게 벤처기업법 개정이다. 협회가 벤처기업법 개정에 주목하는 이유는 일반법인 상법보다 특별법인 벤처기업법이 우선 적용되기 때문이다. 협회 관계자는 "현재 업계 의견을 반영해 벤처기업법 개정을 통한 자사주 소각 의무 관련 예외·특례 조항 신설 방안을 검토 중이며, 관련 개정안은 중소벤처기업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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