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10년전 일, 디지털세상에서 잊힐 권리

서명훈 기자
2015.01.25 10:58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기사 정정 요청 건’

얼마 전 받은 이메일 제목이다. 기자라면 누구나 절대 받고 싶지 않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받게 되는 메일이다. ‘내가 뭘 잘 못 썼을까, 심각한 실수면 어떡하나’ 등 온갖 생각이 스쳐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용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무려 11년이나 지난 기사를 좀 삭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달 전에 쓴 기사도 정확히 기억하기 힘든 마당에 10년도 지난 기사가 생각날 리 만무했다.

기사를 찾아보니 기술표준원에서 일부 업체의 KS 인증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직접 취재해서 쓴 기사가 아니라 정부가 발표한 내용이기 때문에 팩트가 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당 업체는 당시 품질 문제로 KS인증이 취소된 것은 맞지만 그 이듬해에 바로 품질을 개선해 다시 KS인증을 재취득했다고 항변했다. 그 이후 장사를 계속 해 오고 있는데 11년 전 KS인증 취소 기사 때문에 영업에 지장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구매의사가 있던 소비자들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기사를 보고 품질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오인, 구매를 꺼린다는 설명이다. 11년전의 KS인증 취소에 대한 보도는 있지만, 10년전 인증을 다시 취득했다는 기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대부분의 독자들은 기사가 작성된 연도까지 꼼꼼히 살피는 경우는 드문 게 사실이다. 2004년 1월에 일어난 일에 대한 기사를 2015년 1월에 본 경우 2015년의 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팩트가 틀리지 않은 다음에야 기사를 고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답장으로 기사 수정이 힘든 상황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회사 대표이사가 직접 나섰고 일단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사실 만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수는 없는 터라 난감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만으로도 환갑에 가까운 나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기에 거듭되는 요청을 계속 거부할 수는 없었다. 대표이사는 만나자마자 ‘왜 2004년에 있었던 일을 지금 끄집어내서 기업하기 힘들게 하느냐, 기사 본문에는 왜 연도를 쓰지 않느냐’ 등등을 따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설명한 끝에 최근에 쓴 기사가 아니라 과거 기사가 인터넷 상에 남아 있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했다. ‘10년 전에 일어난 일로 이렇게 고통받는 것은 너무 불공평하다. 제발 기사를 없애 달라’는 것이 그의 하소연이었다.

하지만 기사를 삭제했을 경우를 생각해 보니 선뜻 그리할 수도 없었다. 인증이 취소된 적이 없는 경쟁업체가 있다면 중요한 비교우위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찾은 방법은 늦기는 했지만 KS인증을 재취득했다는 내용을 기사로 쓰는 것이었다. 기사 AS(애프터서비스)랄 수 있겠다. 물론 KS인증 재취득 여부는 인증서 등 확인을 엄밀히 거쳤다. 이번 경우 그렇게 잘 끝났지만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는 과거에 대해 잊힐 권리를 보장받는 게 쉽지 않다. 쉽게 잊힐 수 없는 환경이 됐다면 후회할 수 있는 일은 미리 만들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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