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에서 수학과 법정 다툼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둘 다 '사실로 증명되지 않으면 참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는 가는 길은 동일하다.
인도 출신의 입자물리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사이먼 싱이 2003년 저술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 FLT, 영림카디널 역)'는 하나의 완성된 진실을 찾는 길이 얼마나 먼 것인지를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약 2000년 전부터 시작해 1994년에야 완전히 완성된 하나의 문제를 푸는 수학사의 드라마틱한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명제는 간단하다. 'X^n+Y^n=Z^n에서 n이 3이상인 정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중학교 때쯤 배운 피타고라스의 정리(직각 삼각형의 두 변의 제곱의 합은 빗변의 제곱과 같다, 'X^2+Y^2=Z^2')의 확장형쯤인 간단한 명제다.
17세기 피에르 드 페르마라는 천재 아마추어 수학자(프랑스의 법률가)가 자신이 보는 수학문제집 옆에 긁적거리듯이 써놓은 이 명제는 약 350년 동안 전세계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줬다.
수많은 수학천재들은 이 문제를 푸는데 몰입했으나, 어느 하나의 가설을 만족하면 다른 곳에서 허점이 나오고, 또 다른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쪽에서 허점이 나와 완벽한 퍼즐을 맞추는데 실패했다.
역사상 최고의 수학자로 불려 '수학의 왕자'라는 가우스조차 이 문제를 두고 '진위 여부를 증명할 수 없는 수학정리'라고 언급하며 포기했을 정도다.
350년간의 이 난제는 영국의 수학자인 앤드루 와일즈 옥스포드대 교수가 지난 1994년 정수론에서 활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증명하면서 해결됐다. 이처럼 간단해 보이는 하나의 수학적 증명에도 수백년의 시간이 걸린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선 기업들은 증명되지 않은 혐의와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과정에서 기업들이 이들에게 청탁의 대가로 뇌물을 줬고, 이 뇌물로 인해 민원을 해결했다는 게 의혹의 줄거리다.
삼성을 예로 들면 삼성이 최순실 정유라 모녀의 승마를 지원했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국민연금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얘기했다는 것은 팩트로 보인다.
문제는 최종적으로 '뇌물죄'를 증명하기 위해선 이 두 사안을 연결짓는 고리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다. 삼성이 박 대통령이나 최순실에게 합병을 부탁한 증거나, 최순실 등이 합병을 대가로 금전적 이익을 요구한 정황의 연결이 필수적이다.
삼성은 박 대통령의 압력에 의해 최순실 모녀를 지원했지, 삼성물산 합병을 대가로 최순실 등을 지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은 적법한 절차를 거쳤고, 그 당시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외국계 펀드 중 일부도 삼성의 합병안에 찬성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물론 수학의 증명과 형사재판에서의 원고와 피고의 주장이나 증명 과정은 다르다. 모든 증거와 증명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게 사법체계이니 학술적 검증과정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의 문제는 숫자로 명확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보니 입증하기가 수월치 않다. 그래서 사법제도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뿌리를 두고, 증거우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일단 증거로 입증되지 않으면 무죄로 추정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법의 오류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죄를 확정지을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사형선고 후 18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된 인혁당 사건 등 사법살인의 불행하고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증명되지 않은 피의사실로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야만의 시대, 그 흔적을 갖고 있다.
현재 우리가 그들의 시대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선 야만의 시대와 다른 냉철한 판단과 냉정한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특검이 촛불 민심과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엄정하게 수사하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여론에 떠밀려 증명되지 않은 추정으로 몰아 붙여서는 안된다. 특검이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많이 가진 자라고 해서 그랬을 것'이라는 추정에 기반해 죄를 물을 수는 없다. 사안이 중대한 만큼 특검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듯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과거 그들이 저질렀고, 우리가 비난했던 야만의 폭력을 스스로 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