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한 해였다. '황금돼지의 해'가 무색할 정도로 2019년, 기해년(己亥年) 한 해 한국 산업 어느 한 곳도 무탈하지 못했다. 4차산업혁명 거품이 빠진 반도체, 불황에 노출된 화학, 철강 등 대한민국 수출 탑3 산업의 이익이 반 토막 났다.
누가 더 어려운지 경쟁을 하는 건 아니지만 국내 산업 가운데 자동차가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GM 군산공장이 지난해 폐쇄돼 구조조정의 서막을 알렸는데, 올해 그 징후가 뚜렷하다.
11월까지 361만377대가 생산됐는데, 이대로 라면 올해 ‘생존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400만대를 넘기가 어려워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차 생산은 2015년에 455만대로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 길을 걷고 있다. 국내 생산 차량이 400만대 이하로 떨어지면 완성차 공장 가동률이 낮아지고 부품 업체의 연쇄 도산이 우려된다.
문제는 이 위기가 단순히 경기순환 주기에 따른 불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동차 산업 구조의 판이 바뀌는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수소전기차로의 전환, 자율주행차, 차량공유, 개인용 비행차량(PAV·Personal Air Vehicle) 등 하나하나가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일이 한꺼번에 쏟아져 대혼전이 벌어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가 100년에 한 번 오는 대변혁의 시대에 직면했다.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어느 날 밤 문득 이제 도요타의 경쟁자는 자동차 회사만이 아니라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의 고백이다.
현대차의 한 사장은 "두 눈을 가리고 죽음의 계곡을 건너고 있다"고 말했다. '죽음의 레이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미래사업에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 붇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2025년까지 61조원을 투자한다. 내연기관 차량 판매로 벌어들인 돈을 고스란히 내놔야 한다. 한발만 잘못 내딛으면 천 길 낭떠러지다.
현대차 완주를 응원하는 것은 자동차 산업의 파급력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의 직접 고용 인원은 약 35만 명. 구조조정이 시작되던 2015년에 18만 명이던 조선업의 2배다. 조선업 종사자는 혹독한 구조조정 끝에 2018년에 10만 명으로 줄었다. 20조원의 자금이 투입됐고, 울산, 거제, 군산 등 지역 경제도 찬바람을 맞았다. 가뜩이나 저성장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자동차 산업이 휘청거린다면 그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 시점에서 노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함께 손을 잡아도 시원찮을 판에 철없는 어린아이 같이 떼쓰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 노조는 23일부터 전면 파업 중이다. 업계 1위 현대기아차만큼 대우해 달라고 한다. 파업 장기화로 올해 판매가 20% 이상 줄었고, 르노 본사에서 신차를 배정받지 못해 공장을 놀릴 처지라는 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맏형 현대차도 만만치 않다. 공장 내 와이파이 차단에 반발해 노조가 특근을 거부했다. 휴대폰으로 축구를 보면서 차를 조립하는 일을 금지시키자 현장탄압이라고 맞서고 있다.
기아차 노조도 잠정합의를 걷어차고 부분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준영 기아차 대표는 "언론 비판과 비난 댓글에 참담한 심정"이라며 "고객과 국민의 눈초리가 차갑다"고 호소했다.
"임금 상위 20%에 해당하는 대기업 노조가 불평등의 '치유자'가 아닌 '생산자' 혹은 '수혜자'로 변모했다"(이철승 서강대 교수)는 지적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군산공장이 폐쇄되기 직전까지도 파업을 지속했다.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