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직장인 김진규씨(32·서울 동작구)는 최근 한달새 현대차 송파대로지점을 5번 찾았다. 2번은 평일 저녁 8시 이후, 나머지 3번은 주말 저녁 6시30분 이후였다. 이 지점은 이 시간대에 직원이 모두 퇴근한 야간 비대면 매장으로 운영된다. 카메라로 'QR코드'를 찍고 본인인증만 하면 마음 편하게 나홀로 매장을 둘러볼 수 있다.
김씨는 "첫 차 구매를 앞두고 되도록 많은 차량을 비교해보고 싶은데 자동차 매장은 아무래도 가전매장이나 의류매장에 비해 가볍게 방문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송파대로 무인매장에서는 매장 직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차량을 마음껏 살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편의점을 시작으로 유통가에 불던 무인매장 바람이 자동차, 가전, 통신업계 등 전방위로 퍼지고 있다. 무인매장의 확산을 보노라면 영업은 '맨파워'라는 오랜 공식이 무색한 지경이다.
특히 1대에 최소 수천만원인 자동차업계에 무인매장이 등장한 것을 두고 시장에서도 "파격", "신선한 실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자동차는 가격 못지않게 안전성이나 편의사항, 디자인, 연비 등을 두고 호불호가 갈리는 만큼 전문지식을 갖춘 영업직원의 영향력이 어느 분야보다 강한 것으로 통용됐기 때문이다.
자동차만큼 제품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가전업계에서도 LG전자가 지난 5월부터 전국 9개 매장에서 직원들이 퇴근한 뒤 무인매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이들 매장에 다녀간 고객들이 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기업들이 무인매장을 도입하는 이유를 단순하게 파격을 선보이고 눈길을 끌기 위한 실험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 박힌 키워드로 전문가들은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 등장, 코로나 장기화, 최저임금 부담을 꼽는다.
무엇보다 매장 직원의 눈길이나 설명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을 고려해 의류·패션업계를 중심으로 시작된 '혼자 볼래요 장바구니' 같은 시스템이 업종을 가리지 않고 확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MZ세대가 사회에 진출하고 소비력을 갖춘 고객층으로 등장하면서 기존 세대와 달라진 쇼핑 패턴을 반영하려는 기업들의 고민이 무인매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서울 종로구에 문을 연 LG유플러스의 1호 무인매장도 이런 고민의 결과다. 박성순 LG유플러스 채널혁신담당은 "직원들의 과도한 응대나 매장·직원별로 상이한 서비스처럼 MA세대 고객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은 비대면 매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며 "고객들이 매장 방문 목적을 부담없이 달성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무인업무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1년 반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19 사태도 무인매장 확산을 재촉하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MZ세대의 소비 트렌드 변화에 더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비대면 소비 선호 현상이 야간 언택트 전시장 기획으로 이어진 주요 배경"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무인매장의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아마존 고'의 경우에도 2016년 당시에는 고객 편의를 위한 시스템으로 기획됐지만 2018년 공개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맞물리면서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아마존 고'에서는 상품 결제를 위해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서거나 기다릴 필요 없이 물건을 골라 들고 나오면 매장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가 골라담는 상품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자동 결제한다. 코로나19 초창기 홍역을 앓았던 중국에서도 지난해 이후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간편결제서비스를 활용한 무인매장이 빠르게 늘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2016년 25억달러(약 2조8000억원) 수준이었던 무인계산대 시장은 2022년 46억달러(약 5조2000억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변수에 따라 무인매장과 무인계산대 시장이 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수 있다고 본다.
기업이나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급등하는 인건비 부담을 낮출 수 있는 고육지책이 무인매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무인매장을 운영하면 직원을 다른 업무에 투입하거나 고용하지 않아도 돼 업무 효율성이나 비용 절감 등에서 이점을 크다는 얘기다.
최근 아파트 단지 등 주거밀접지역에서 부쩍 눈에 띄는 무인 스터디카페나 아이스크림매장, 세탁소가 이런 사례다. 올해 최저임금은 8720원이지만 주휴 수당 등을 합하면 최저임금이 사실상 1만원이 넘었다는 게 자영업자들의 설명이다. 직원 1명을 고용하면 인건비로만 한달에 200만~300만원이 나간다.
인천 부평구에서 '커피에반하다' 무인매장을 운영하는 이주현 점장은 "무인매장으로 바뀐 뒤 매출은 줄었지만 비용이 더 줄어서 수익이 나아졌다"며 "코로나19 여파에도 2년 넘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편의점업계에서는 매장 방문객이 적은 야간 시간에만 무인 형태로 운영하는 '하이브리드형 점포'도 크게 늘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의 무인 점포는 지난 4월 말 기준 290여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0개 늘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CU도 무인 점포수가 올 3월 말 기준 270개 1년 새 90개 늘었다.
무인화 바람이 거세지면서 일자리 감소나 노인·장애인 등의 디지털 소외 문제 등을 두고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자영업 특성별 고용현황 및 평가'에 따르면 직원을 고용한 자영업자는 지난해 137만2000명으로 1년 전보다 16만6000명(10.8%) 줄어든 반면 직원 없는 자영업자는 408만명에서 416만명으로 2.2%(8만명) 늘었다.
다만 무인화라는 시대의 흐름을 두고 막연한 불안감이나 반대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건설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술의 발달로 무인화가 진행되는데 과거 러다이트 운동처럼 기계를 없앤다고 해서 막을 수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일자리 방어 차원에서 대응하기보다는 기존 인력이 새로운 일자리로 이전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무인화 경향은 무조건 사람을 없애고 자동화만 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무인화로 발생하는 여유인력의 업무방식을 고민해 새 경쟁력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