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업체들이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도 올해 중저가형 전기차를 속속 선보인다. 경제성을 우선순위에 두는 고객 수요를 끌어들이는 한편 전기차 대중화 시대에 앞서 점유율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이달 말 스페인 타라고나에서 개최하는 '기아 EV 데이'에서 소형 전기 SUV 'EV2' 콘셉트카를 공개한다.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과 체급이 비슷한 소형차로 유럽 현지 수요를 공략할 전망이다.
이 행사에서 함께 공개되는 기아의 첫 준중형 전기 세단 'EV4'는 다음달부터 국내 시장에 선보인다. 한국 시장에서는 'K3'의 후속 'K4'를 출시하지 않고 사실상 EV4로 대체된다. 준중형 세단 시장에서 기아는 전기 모델만으로 라인업을 꾸리는 것이다. 중국, 중동 등에서 먼저 출시된 준중형 전기 SUV 'EV5'도 올해 전 세계 시장에 확대 판매할 계획이다.
테슬라는 올해 상반기 소형 해치백 모델 Q를 출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1만대 이상 판매한 중형 전기 세단 '모델 3'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3만 달러(약 4300만원)선에서 가격이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폭스바겐은 2027년 양산 예정인 엔트리급 전기차에 앞서 내년에 ID. 2all(올)을 먼저 내놓는다. ID.2올은 약 2만5000유로(한화 3500만원선)로 예상된다.
이미 국내 시장에서도 자동차 업계는 보급형 전기차를 내세워 가격 경쟁에 나선 상황이다. 기아가 지난해 7월 출시한 소형 SUV 'EV3'는 3000만원 중반대 가격을 내세워 반년 만에 판매량이 12만2000대를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다. 지난해 4분기 고객 인도를 시작한 현대차 소형 전기 SUV '캐스퍼 일렉트릭'도 약 3개월 만에 8657대를 판매했다.
실제 전기 승용차 수요는 가격경쟁력 중시 성향이 짙어졌다는 분석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3000만원~4000만원대 전기차 판매 비중은 2023년 12.5%에서 2024년 32.8%로 2.6배 증가했다. 소비자들도 전기차 구매 시 친환경성보다 경제적 효율성을 더 중요한 고려 요소로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딜로이트그룹의 '2025 글로벌 자동차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의 전기차 구매 결정 요인으로 △연료비 절감(57%) △환경 보호(43%) △유지보수 비용 절감(38%) 순이었다.
저비용을 앞세워 전기차 판매 영토를 넓히는 중국에 맞서 전기차 대중화 시대에 선제적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겠다는 전략도 깔려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 BYD는 지난달 소형 SUV(다목적스포츠차량) '아토3'를 3000만원 초반 가격에 출시했다.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을 더하면 실제 구매 가격은 2900만원대로 떨어진다. BYD가 진출한 해외 시장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수준으로 일본보다 1000만원가량 낮은 가격이다. 볼보는 이달 국내에 공식 출시한 소형 전기 SUV 'EX30'의 가격을 전 세계 중 한국에서 가장 저렴하게 책정했다. 보조금 적용 시 4000만 원 초반대까지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캐즘에 전기차 시장 성장이 침체돼있지만 가격 경쟁력만 확보된다면 전기차 구매 수요는 언제든 살아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전기차 시장은 소형급 신차들의 판매가 늘면서 상용 전기차 판매 대수를 제외하면 캐즘에도 불구하고 판매가 크게 줄지 않았다"며 "완성차 업체들이 엔트리급 모델로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전년 대비 전기차 판매는 더 늘어날 거라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