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2000대 기업의 성장세를 분석한 결과 중국 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한국보다 6.3배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중국 기업 95곳이 글로벌 기업에 진입하는 사이 한국 기업은 명단에서 빠졌다. 기업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미국 포브스 통계를 기반으로 작성한 '글로벌 2000대기업의 변화로 본 한미중 기업삼국지'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2000'에 속한 한국 기업은 10년 전 66개에서 현재 62개로 줄었다. 같은 기간 미국 기업은 575개에서 현재 612개로, 중국기업은 180개에서 275개로 증가했다.
기업의 성장세도 한국은 미국과 중국보다 떨어졌다. 글로벌 2000대 기업 중 한국 기업의 합산매출액은 10년간 15% 성장(1조5000억 달러→1조7000억 달러)에 그쳤지만 중국 기업은 4조 달러에서 7조8000억 달러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성장스피드가 한국의 6.3배에 달하는 셈이다. 대한상의는 "중국의 기업생태계가 '신흥 강자'를 배출해서 힘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알리바바(이커머스, 1188%) △BYD(전기차, 1098%) △텐센트홀딩스(온라인미디어ㆍ게임, 671%) △BOE테크놀로지(디스플레이, 393%) 등 첨단기술·IT 분야 기업들이 주로 성장을 이끌었다. 또 △파워차이나(에너지, 849억달러) △샤오미(전자제품, 509억달러) △디디글로벌(차량공유, 286억달러) △디지털차이나그룹(IT서비스, 181억달러) 등 에너지, 제조업, IT를 포함한 다양한 산업군에서 글로벌 2000으로 진입하며 성장 스피드를 올렸다.
반면 한국은 새롭게 등재된 기업은 주로 금융기업(삼성증권, 카카오뱅크, 키움증권, iM금융그룹, 미래에셋금융그룹 등)이었다. 성장도 △SK하이닉스(215%) △KB금융그룹(162%) △하나금융그룹(106%) △LG화학(67%) 등 제조업과 금융업 중심으로 이뤄졌다.
한국 기업의 느린 성장 속도는 규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기업이 성장할수록 '지원'은 줄고 '규제'는 늘어나는 역진적 구조다. 기업이 위험을 감수해 가며 성장할 유인이 적은 상황이다. 김영주 부산대 교수가 12개 주요 법률(상법, 공정거래법, 외부감사법 등)을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이 되면 규제가 94개로 늘고 중견에서 대기업을 넘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되면 343개까지 증가한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이달 초 기업성장포럼 출범식에서 우선 메가샌드박스라도 활용해 일정 지역, 일정 업종에서라도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역에 '규제 Zero(제로) 실험장'을 만들어 기업들이 AI 등 첨단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는 얘기다.
실제 미국 실리콘밸리는 발전 가능성이 있는 신기술·신사업에 대해 '해를 끼치지 않는'(Do no harm) 최소한의 규제 원칙을 적용해 수많은 기술혁신과 유니콘 기업이 탄생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한 해에 중소기업에서 중견으로 올라가는 비중이 0.04%, 중견에서 대기업 되는 비중이 1~2% 정도"라며 "미국이나 중국처럼 다양한 업종에서 무서운 신인기업들이 빠르게 배출되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