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수억대 성과급 현실화…'의대 쏠림' 흔든다
의사보다 돈 잘 버는 회사원 시대가 왔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아 기록적인 실적을 거두고 있는 SK하이닉스가 그 문을 열었다. 전국의 의과대학이 인재를 싹쓸이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깨지는 계기가 될지 반도체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5일 임직원들에게 '초과이익분배금(PS)'을 지급했다. 지급률은 기본급의 2964%, 연봉의 1.5배다. 차장 3~4년 차가 대략 연봉 1억원(세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총급여가 약 2억5000만원이 되는 셈이다.
역대급 성과급이 풀린다는 소식에 금융권도 분주하다. A은행은 지난달 SK하이닉스 임직원을 대상으로 자산관리 세미나를 열고 여유자금 운용 전략을 소개했다. 또 직원들을 대상으로 IRP(개인형퇴직연금)와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를 활용한 절세형 재테크 방안을 중점적으로 안내 중이다. 일부 은행은 이달말까지 SK하이닉스 임직원을 대상으로 펀드 가입 이벤트도 진행한다.
직원들이 급여 이체에 많이 이용하는 SK하이닉스 새마을금고는 지난주부터 최대 연 3.5% 금리를 제공하는 예금 특판에 나섰다. 최근 저축은행의 평균 금리는 연 2.95% 수준이다.
수입차 업체도 움직이고 있다. 포르쉐 등 고급차 브랜드를 중심으로 일부 딜러사 등이 특별 프로모션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급쟁이의 반란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지난해 9월 SK하이닉스 노사는 영업이익 10%를 재원으로 하되 성과급 상한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금액 자체는 얼마든지 더 치솟을 수 있다. 올해 시장에서 예측한 영업이익 전망은 150조원(씨티그룹)·179조원(모건스탠리) 등으로 너도나도 올려잡고 있어서다. 지난해 영업이익 47조원보다 무려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현 추세대로 간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SK하이닉스 차장급의 내년 이맘때 성과급은 약 4억5000만원, 총급여는 5억원을 훌쩍 넘기게 된다. 병·의원에 근무하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평균 연봉이 3억원대인데 이보다 월등히 높아진다는 얘기다.
이같이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SK하이닉스 임팩트'가 우리 사회의 병폐로 지목돼온 '의대 쏠림' 구도를 흔들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AI(인공지능) 대전환기에는 이공계는 물론 사회문화적 재설계를 이끌 문과적 리더 등 다방면서 인재가 절실한데 방산과 조선, K컬처 등 여러 분야에서 유례없는 호황을 맞은 지금이 분위기 반전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인식의 변화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이번 입시에서 최상위권 학생들이 예전처럼 '묻지마 의대 쏠림' 현상에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며 "지금 상황이 반도체 학과뿐 아니라 다른 이공계 학과 등으로 전파될 수 있도록 정책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②AI와 함께 인재 지형 변화…'엔지니어 CEO'시대 열려
'SK하이닉스 성과급 임팩트'(이하 하이닉스 임팩트)가 한국 사회의 '성공 공식'을 흔들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최상위 인재의 선택지는 의과대학에 집중됐다. 안정적인 소득과 사회적 지위가 결합한 의료 직군은 가장 확실한 성공 공식으로 인식됐고 '의대 쏠림' 현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하이닉스 임팩트'는 기술 기반 제조기업에서도 의사에 준하거나 그 이상의 보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최근 입시에서 반도체학과를 중심으로 의대 쏠림이 다소 완화되는 모습이 나타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로 선택의 기준이 안정성에서 산업·기업의 성장성, 기술 가치, 장기 보상으로 이동하는 흐름까지 보이고 있다. 이는 AI(인공지능) 산업이 불러온 인재 지형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이공계 인재 43% 외국으로 이직 고려.."새로운 기회 열어"
한국 사회는 최상위권 인재 상당수가 의료 분야로 진학하고, 이공계를 선택한 인재는 더 나은 연구 환경과 경력 기회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를 두고 개인의 선택을 넘어 국가가 장기간 투자해 축적한 인적 자원이 특정 분야로 쏠리고, 해외로 유출되며 과학기술 역량과 성장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체류하는 석·박사급 이공계 인력의 42.9%는 '향후 3년 내 외국으로의 이직을 고려'하고 있었고, 해외 이직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로 '금전적 요인(66.7%)'을 꼽았다. 특히 최종학위 취득 10년 후 연봉을 비교하면 국내에 취업한 이공계 인력의 평균연봉은 9740만원으로 해외취업자(3억9000만원)와 국내 의사(3억원)보다 2억~3억원이 적었다.
이런 상황에서 SK하이닉스의 성과 보상은 이공계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앞서 SK하이닉스의 성공 사례를 다룬 '슈퍼 모멘텀'의 저자인 유민영 플랫폼 9와3/4 대표는 "사회적 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러 사다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 '하이닉스 임팩트'가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열었다"고 강조했다.
◇투명한 성과급 체계와 성장성..육아 휴직자도 복귀 중
'하이닉스 임팩트'의 핵심은 성장성과 투명한 성과 보상 체계다. 성과급이 경영진의 재량이나 일회성 보너스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약속된 분배 구조라는 점에서 신뢰도가 높다. 동기 부여를 넘어 장기적인 진로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배경이다.
SK하이닉스는 연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배분하고, 개인별 최대 지급 한도를 두지 않고 있다. 연간 영업이익과 직원 수가 공시되기 때문에 성과급 규모는 누구나 계산할 수 있다.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47조2063억원)과 직원 수(지난해 6월 기준, 약 3만3500명)를 고려하면 1인당 약 1억4000만원의 성과급이 지급되는 구조다.
기업의 성장성이 더해지면서 미래 보상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이 추정한 올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평균 142조3000억원이다. 직원 수에 큰 변화가 없다고 가정하면 1인당 약 4억2500만원의 성과급이 산출된다.
이는 인재 유지 지표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6월말 기준 SK하이닉스의 육아휴직 사용자는 433명으로 6개월 전보다 42.7% 줄었다. 같은 기간 육아휴직 사용률은 6.6%에서 4%로 낮아졌다. 늘어난 성과급을 받기 위해 육아휴직 중 복직을 선택한 직원도 다수 있다는 전언이다.
◇이직률 0.9%..엔지니어 출신 CEO 시대
AI 확산이라는 산업 구조 변화가 SK하이닉스 성장의 중요한 요인인 건 분명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HBM(고대역폭메모리)을 미리 준비하며 '길목'을 선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유능한 이공계 인재가 이를 뒷받침했다.
한때 파산 위기까지 몰렸던 SK하이닉스는 인재 확보를 위해 경쟁사가 채용을 진행할 때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워크숍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2024년 SK하이닉스의 자발적 이직률은 0.9%에 불과했고, 이제는 경쟁사 인재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의 인재 지형도 바뀌고 있다. AI 전환이 본격화하면서 반도체를 비롯해 데이터센터, 로봇, 자율주행 등 고급 이공계 인력이 필요한 산업의 가치가 급격히 상승했다. 조선과 방산, 전력·인프라 등 전통 제조업 역시 고부가·고기술 산업으로 재편되며 호황기를 맞고 있다. 숙련된 이공계 인재의 몸값도 빠르게 오르는 추세다.
기술리더십이 기업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면서 '엔지니어 CEO(최고경영자) 시대'도 열렸다. 현장의 기술과 산업 구조를 이해하는 인물이 기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AMD의 리사 수 회장, TSMC의 웨이 저자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2013년 CTO(최고기술책임자)였던 박성욱 전 부회장이 CEO로 임명되며 첫 엔지니어 출신 CEO 체제가 시작됐다. 이후 이석희 전 사장과 곽노정 사장까지 엔지니어 CEO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제2, 제3의 SK하이닉스가 나와야 한다"며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을 포함한 다양한 기업에서 성장성과 성과 보상이 결합한 역동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