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폭염경제 핫 노멀]②

역대급 폭염이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미국은 기록적인 고온 여파로 전력망 붕괴 위기에 처했고, 유럽 전역에서는 온열 질환 사망자가 급증하며 비상이 걸렸다. 노동생산성 중심으로 운영되는 아시아 의류 공급망도 타격을 입었고, 첨단산업의 상징인 AI 데이터센터도 폭염으로 인한 냉각 비용 급증과 전력망 비상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여름 한 철의 돌발 변수였던 폭염이 이젠 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는 이른바 '핫 노멀(Hot Normal)'로 자리 잡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폭염 피해가 가장 즉각적으로 나타난 곳은 노동생산성이다. 글로벌 경제·산업 리스크 분석기 알리안츠 트레이드에 따르면 기온이 30~35도 구간에서 1도 오를 때마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약 3% 가까이 줄어든다. 야외 노동뿐만 아니라 제조 설비 과열과 물류 차질로 인해 관광, 농업, 에너지 등 경제 전 분야가 도미노 타격을 입는다.

에어컨 보급률이 19%에 불과한 유럽은 이 위기에 더욱 취약하다. 프랑스 파리의 대표 관광지인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은 폭염을 이유로 조기 폐관했고,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은 최근 냉방 고장으로 휴관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산하 병원에서도 냉각 설비가 폭염으로 고장 나고, MRI(자기공명영상) 장비가 멈춰 수백 건의 진료가 취소됐다.
알리안츠 트레이드는 "현재의 폭염이 2030년까지 반복될 경우 유럽 주요국의 GDP(국내총생산) 누적 손실이 5~7%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국가별로는 프랑스가 2400억달러(약 360조원), 이탈리아 1470억달러, 스페인 1200억달러의 경제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글로벌 제조업의 심장 역할을 하는 아시아 공급망도 흔들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도와 동남아시아 의류 공장들은 올해 폭염으로 인해 노동생산성이 최대 10%나 떨어졌다. 고온으로 인한 결근율 상승과 실내 온도 통제 실패에 따른 제품 불량률 급증이 원인이다.
세계은행(WB)은 이런 폭염으로 인한 노동력 손실이 인도 GDP의 최대 4.5%를 갉아먹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코넬대 국제노동연구소(GLI)는 방글라데시·캄보디아·파키스탄·베트남 4개국이 폭염과 침수로 2030년까지 수출 소득의 22%인 약 656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첨단산업 AI(인공지능) 열풍도 폭염 충격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폭염·가뭄 등 기후 재해로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연간 추가 비용이 2035년 810억달러, 2065년 1680억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최신 AI 칩은 기존 서버보다 10배 이상 많은 에너지를 쓰며 열을 뿜어내는데, 외부 기온까지 겹치면 냉각 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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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는 평상시에도 냉각에 전체 전력의 최대 40%를 쓰는데 폭염 시 이 비중은 더 커진다. 지난달 미국 중부·동부 폭염 당시 PJM인터커넥션은 13개 주 데이터센터에 비상 발전기 전환을 지시하기도 했다. 다트머스대 지리학과 저스틴 맨킨 교수는 ABC뉴스에 "극심한 더위는 경제적 결과를 낳는다"며 "그 영향은 거의 모든 곳에서 부정적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전력만이 아니다. 대형 AI 데이터센터 한 곳은 하루 최대 500만갤런(약 1900만리터)의 물을 냉각에 쓰는데, 공교롭게도 이 수요가 가장 치솟는 시점이 지역사회가 물 부족을 겪는 폭염 절정기와 겹친다. 실제로 2022년 영국에 기록적인 폭염이 닥쳤을 때 구글과 오라클은 기온이 38도를 넘어서자 일부 클라우드 컴퓨팅 시설의 가동을 중단한 바 있다.

폭염 등 기후변화 위기를 기회로 바꾼 기업도 있다. 글로벌 브랜드의 제조자개발생산(ODM)·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인 홍콩 에픽그룹이다.
에픽그룹은 지난 4월 인도 오디샤주에 폭염을 고려해 설계한 신규 생산시설 '트리메트로(Trimetro) 캠퍼스'를 가동했다. 에어락 형태의 출입구를 지나면 바깥의 찜통더위가 사라지고, 천장에 매달린 대형 배관과 팬이 지속해서 찬 바람을 순환시킨다. 그 결과 외부 기온이 34도를 넘어설 때도 공장 내부 온도는 28도 안팎으로 유지된다.
이 공장은 인도의 살인적인 폭염에도 불구하고 정상 가동을 유지하며 연 2000만벌 생산 규모와 1만개 일자리를 창출하는 인도 최초의 완전 넷제로 탄소·물 소비 의류 생산 시설로 평가된다. 비두라 랄라파나웨 에픽그룹 수석부사장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계속된 폭염으로 "기존 지침 자체가 무의미해졌다"며 산업용 건물 설계 기준이 이젠 기계가 아닌 사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