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리터당 1750원에 주유했습니다."
"저는 1740원대에 넣었어요."
최근 한 업계 관계자와 가진 식사 자리에서 오간 대화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간 전쟁이 벌어진 후부터는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됐다. 물론 결국은 "기름값은 왜 이렇게 빨리 오르는 거냐"는 푸념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유업계에서도 이미 책임 공방이 한차례 오갔다. 정유사와 주유소가 서로를 향해 '빌런'이라고 지목하면서다. 주유소업계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기름을 먼저 공급하고 가격은 나중에 확정하는 사후정산제를 문제로 꼽고 있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일부 주유소가 가격 상승을 예상하고 물량을 비축하면서 가격이 더 빠르게 뛰는 것처럼 보인다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처럼 중동 정세에 따라 움직이는 유가는 한국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하지만 그 때마다 우리가 대응하는 방식은 '빌런 찾기'에 집중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정부가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냈지만 소비자 가격에 즉각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 공방이 벌어졌다. 여론의 화살은 주유소와 정유사 중 누가 가격을 늦게 내렸는지로 쏠렸다.
반면 우리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일본의 대응은 달랐다. 일본은 202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약 80조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 정유사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올해 초에는 1974년 '오일 쇼크' 이후부터 부과해온 휘발유 잠정세율을 폐지했다. 결국 약 95%에 달하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상승폭은 20원 수준에 그쳤다. 최근 국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원 이상 오른 것과는 대조적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대응 체계를 갖추는게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담합이나 불공정 행위가 발견된다면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만 누가 문제였는지 따지는데 에너지를 쏟는게 최선의 대응은 아니라는 얘기다.
유가 리스크는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유가 급등 시 가동할 세제 조정 장치나 비축 물량 활용 방안, 가격 안정 대책 등을 매뉴얼처럼 마련해 두는 일이 필요하다. 기름값이 출렁일 때마다 반복되는 '빌런 찾기'보다는 이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