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과학기술원(과기원) 학생들이 창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10명 중 1명만 실제 창업에 나선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실패에 대한 부담감으로 과감한 도전보다는 안정적 취업을 선택하는 탓이다. 기술 인재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교육 확대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30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기업가정신발전소가 여론조사 전문업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4대 과학기술원 대학(원)생 창업 실태 및 촉진 요인 조사'에 따르면 '이공계 창업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87.8%에 달했다. 이번 조사에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광주과학기술원(지스트), 울산과학기술원(유니스트), 대구경북과학기술원(디지스트) 등에서 302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응답자 대다수가 창업의 필요성을 말한 반면 창업을 본인의 진로로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10.9%에 불과했다. 과기원생들이 희망하는 진로는 '학계·연구기관(교수·연구원 등)'이 39.4%로 가장 많았으며 '대기업 취업(25.5%)', '전문직(18.9%)'이 뒤를 이었다.
창업 도전을 꺼리는 이유는 부담감이었다. 창업을 시도한 적이 있으며 앞으로도 고려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5.6%에 그쳤다. 창업에 적극적이지 않은 응답자(94.4%)들은 창업을 고려하거나 시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실패에 대한 심리적·경제적 리스크 부담'(28.3%)을 꼽았다. '안정적 취업 기회를 포기해야 하는 부담'(26.4%)도 컸다.
창업 실패를 자산이 아닌 리스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창업 실패가 향후 취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응답자의 36.4%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23.2%)보다 많았다.
김민기 카이스트 교수는 "과기원생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커리어 경로가 보장돼 있다고 인식하는 만큼 창업 실패에 따른 위험과 기회비용을 더 신중하게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며 "창업 실패 경험을 재도전이나 역량 축적의 과정이라기보다 안정적 소득과 경력을 놓치는 위험 요소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창업을 도와줄 교육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와 실제 경험의 괴리도 있었다. 응답자 10명 중 6명(60.6%)은 기업가정신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높게 인식했지만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0.1%에 그쳤다.
과기원생들이 희망하는 세부적 교육 주제로는 '사업화 투자유치(35.9%)'가 가장 많았다. 이밖에 '혁신적 사고 및 문제 해결(아이디어 발상)(29.6%)', '창업팀 구성 및 인력 관리(19.2%)' 등 실전형 교육이 높은 수요를 보였다.
주변에 기술 기반 창업에 도전한 인물이 있으면 창업 의지에 긍정적 영향이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기술 기반 창업에 도전한 지인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28.8%였는데 이들 중 과반(55.2%)은 해당 사례가 본인의 창업 의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지상철 고려대학교 세종창업지원센터장은 "연구 성과를 사업화하거나 창업에 도전한 선배들의 경험이 공유될수록 학생들이 창업을 막연한 위험이 아니라 현실적인 선택지로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철 한경협 연구총괄대표 겸 기업가정신발전소장은 "이번 조사는 기술력을 갖춘 이공계 인재들이 창업을 불안정한 진로로 인식해 선택을 망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기술 인재의 창업 회피는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환경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기술 인재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이 자산이 돼 재도전으로 이어지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