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아이언(green iron)을 해외에서 들여올 경우 한국 내에서 수소 기반 저탄소 철강을 직접 생산하는 것과 비교해 최대 28억 달러(약 4조2000억 원)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독일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아고라 인더스트리의 레안드로 얀케 산업 부문 수석 기술 분석가는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철강 산업의 새로운 탄소 감축 해법으로 주목받는 '그린 아이언 무역'의 가능성을 짚었다.
그린 아이언은 저탄소 방식으로 철광석을 환원해 생산된 중간 철 제품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형태로는 직접환원철(DRI)과 열간압축철(HBI)이 있다. DRI를 활용한 철강 생산은 두 단계로 이뤄진다. 먼저 철광석을 철로 전환한 뒤, 이를 자동차나 건물 등에 사용되는 최종 철강 제품으로 가공한다.
그린 아이언은 철강 생산 과정에서 가장 많은 탄소가 배출되는 제선 단계에서 배출을 줄일 수 있어 전체 공정을 보다 친환경적으로 만들 수 있다. 기존에는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기 위해 석탄을 사용하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했지만, 수소를 활용하면 이 과정에서 탄소 대신 물이 생성돼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얀케 분석가는 철강 탈탄소화가 두 가지 축에 기반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철 재활용을 통한 순환성과, 수소 기반 직접환원철(H2-DRI)을 활용한 1차 생산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현재 스크랩 기반 생산은 전 세계 철강 생산의 약 20% 수준이며, 2050년 기후중립 철강을 달성하려면 약 50% 수준까지 확대가 필요하다.
다만 부족한 물량은 수소 기반 직접환원철을 활용한 저탄소 생산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얀케 분석가는 "고철만으로는 전체 수요를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철광석 기반의 저탄소 철 생산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린 아이언 무역'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얀케 분석가는 "그린 아이언 무역은 공급망을 전략적으로 다변화하고 국가별 에너지·자원 비교우위를 활용할 수 있게 한다"며 "철강 산업의 생산과 유통 구조를 보다 효율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이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가 풍부하고 고품질 철광석을 보유한 국가는 저렴하게 저탄소 철을 생산해 수출하고, 제조 역량이 강한 국가는 이를 최종 철강 제품으로 가공하는 방식으로 공급 구조가 재편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모델의 핵심은 에너지 비용 차이에 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은 저렴한 청정 전력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활용해 전기분해 방식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의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이 수소를 철광석 환원 과정에 활용하면 저탄소 철 생산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그린수소 확보가 제한적이고 철강 산업 비중이 큰 한국에는 이러한 모델이 현실적인 선택지로 제시된다. 얀케 분석가는 "한국은 그린 아이언을 수입함으로써 탄소 배출과 에너지 제약, 특히 수소 공급 부족 문제를 완화하면서도 철강 가공 및 제조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 효과도 뚜렷하다. 그는 "저렴한 재생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지역에서 철을 생산해 수입하는 방식은 철강 산업의 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아고라 인더스트리 분석에 따르면 2040년까지 그린 아이언을 수입할 경우 한국의 철강 생산 비용은 12~15% 감소할 수 있다. 연간 1000만~2000만 톤의 DRI 또는 HBI를 수입할 경우 14억~28억 달러의 비용 절감과 함께 연간 1280만~2560만 톤의 탄소 배출 감축이 가능하다는 추산이다. 그는 "그린 아이언 수입은 화석연료 가격 변동성과 공급 리스크에 대한 노출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산업계는 이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는 호주 등에서 자사의 하이렉스(HyREX) 기술의 현지 적용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호주 외 그린 아이언 수출 유력 지역으로는 브라질, 중남미, 중동·북아프리카(MENA), 남아프리카공화국, 캐나다 등이 거론된다. 얀케는 "이들 국가는 저탄소 철 생산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잠재력이 크다"며 "장기 구매계약(offtake agreement), 공동 투자, 공공 금융이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그는 "그린 아이언 수입 확대와 함께 국내 수소 기반 철강 생산 역량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에 중요하다"며 이중 전략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시기가 늦춰져선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얀케 분석가는 "공급망과 투자 선점을 위해서는 조기 대응이 중요하다"며 "대응이 지연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