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조 버는 삼성전자, 그런 기업 대하는 한국 정치 수준

박종진 기자
2026.04.13 05:50

[종진's 종소리]

[편집자주] 필요할 때 울리는 종처럼 사회에 의미 있는, 선한 영향력으로 보탬이 되는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

이달 우리나라를 국빈 방한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청와대 영빈관 오찬 자리에서 흥미로운 점이 포착됐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주요 기업 총수들이 나란히 참석했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해외 출장 중이던 상황을 고려하면 이른바 5대 그룹 중 이 회장만 빠진 이례적 경우다. 이 회장은 국내에서 다른 비즈니스 일정을 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삼성의 인도네시아 관련 사업이 크지 않다는 배경이 작용했다. 형식적, 관례적으로 기업인들을 부르지 않고 실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자리에만 초청한다는 정부 기조가 작동하는 듯 보였다. 같은 맥락에서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닭고기 사업 연관성이 있는 브라질과 2월 국빈만찬에 이어 인도네시아 오찬 행사에도 연이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실용가치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의 이런 친기업적 제스처도 여의도를 만나면 무색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관계자는 "그간 청와대의 메시지가 국회의 입법 과정에서 다른 결로 추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혼란을 겪는다"고 전했다. 국회는 세 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등 기업들이 강력히 반대했던 법안을 일사천리로 몰아친데 이어 요즘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투자를 압박하고 있다.

주요 그룹들은 고용 창출과 상생협력까지 포괄하는 종합적인 지방투자 계획을 수립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는 후문이다. 핵심은 여권의 텃밭인 호남 투자다. A그룹은 계열사에서 수립한 호남 투자 방안을 그룹 차원에서 3번이나 반려했다고 한다. '부족해 보인다'는 자체 검열 결과다. 지역 균형 발전은 매우 중요한 국가적 과제지만 기업 스스로 판단과 전략이 아닌 정치권 눈치 보기식이라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 공약은 4년전 판박이다. '취임 100일 이내에 삼성 유치 MOU(양해각서) 체결', '삼성 반도체 팹(공장) 2개 유치' 등이 난무한다. 전국에서 내건 공약대로라면 삼성전자가 몇 개 더 새로 생겨도 안 될 판이다. 일단락된듯 했던 용인 반도체 산단의 새만금 이전 논란조차 선거판을 맞아 불씨가 살아날 조짐이다.

삼성전자가 1분기 영업이익 57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 기업 실적 역사를 다시 쓰는 수준으로서 그만큼 AI(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글로벌 산업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을 건 사투를 벌이고 세계 각국은 자국 기업을 전방위적으로 돕고 있다.

우리 정치권은 반도체 특별법 하나 통과시키는데도 1년 반이 넘게 걸렸다. 그나마 기업들이 가장 원했던 '52시간 예외' 조항은 뺐다. 중국과 미국은 밤을 새워 연구하는데 우리는 족쇄를 지운다. 한국 정치에 기업은 어떤 존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온 세계가 원팀으로 자기 나라 기업을 지원하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정치가 방해만 하지 말라'고 자조해야 하나.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