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성과급 요구를 둘러싸고 진통을 겪는 삼성전자 노사가 정부의 중재로 진행된 이틀간의 사후 조정에서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조가 성과급 상한을 없애고 이를 제도화하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상황인데 협상 결렬에 따른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12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협상의 최대 쟁점인 성과급 산정 방식과 기준 등을 놓고 양측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전날부터 진행된 사후 조정이 사실상 이날까지 성과를 내지 못한 것.
핵심은 영업이익에서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쓰는 방식을 '제도화'할 것이냐 여부다. 회사측은 기존 성과급 상한제(연봉 50%)에 특별포상을 결합하는 '유연한 보상 제도화'를 제안하고 있지만 노조 측은 '영업이익 15% 고정 제도화'를 요구하면서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일단 회사는 현행 성과급 제도(OPI)와 특별보상을 연계하는 구조가 경영 실적과 글로벌 경쟁환경 등에 따라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메모리사업부의 경우 SK하이닉스 이상의 지급 수준을 보장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노조는 이번 기회에 성과급 상한을 아예 없애고 고정적으로 일정 비율을 받아 가는 방식을 제도화해달라며 맞서고 있다. 전날 노조 대표인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도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과 성과급 상한폐지, 제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조정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노조의 주장대로 지급한다면 올해 증권가의 영업이익 전망치 등을 기준으로 메모리사업부 직원은 1인당 7억원, 적자를 내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시스템LSI사업부 직원은 1인당 4억원 안팎의 성과급을 받을 것으로 추산된다.
재계 안팎에서는 노조의 요구가 무리수라는 비판이 커진다. 재계 관계자는 "'영업이익 15% 고정 성과 인센티브 지급 제도화'는 사실상 성과급을 고정비에 준하게 만들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며 "주요 글로벌 테크기업 중 영업이익의 특정 비율을 무조건 성과급으로 지급하도록 명문화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시장 상황에 맞춰 적기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도 이 같은 성과급 지급 방식은 경쟁력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에서 자본 운용의 유연성이 떨어질 경우 중장기 경쟁력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사측이 파업 엄포에 떠밀려 노조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다른 대기업에서도 동일한 요구가 빗발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카카오에서 영업이익 10%,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영업이익 20%, 현대차에서 당기순이익의 30% 등을 요구하는 등 '이익의 N%' 요구 형태가 산업계 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늘어난 이익을 고스란히 나눠주라는 요구는 비현실적"이라며 "이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투자와 대비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거대 기업에도 부담이지만 전체 노동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은 그 이상이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 협력사 간의 보상 격차를 더욱 벌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초래함은 물론, 대기업으로의 인력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상대적으로 여력이 부족한 협력사는 인력난과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며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전자 노사는 노조의 파업 예고 날짜인 이달 21일 전까지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사후 조정은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중단하지 않는 한 대화를 계속할 수 있다. 노조가 협상 결렬을 선언해도 '파업은 안 된다'는 정부의 의지와 국민적 여론 등이 조정안 도출을 지속적으로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