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의 불참으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 1차 입찰이 사실상 유찰됐다. 한화오션 단독 응찰 구도 속에 영업비밀 유출 우려와 보안감점 문제가 맞물리며 수주전은 다시 표류하게 됐다.
15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전날 마감된 KDDX 1세대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 지명 경쟁입찰에 사전 등록을 하지 않았다. 사전 등록을 하지 않으면 이날 예정된 제안서 제출에도 참여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이번 입찰은 한화오션 단독 응찰 구도가 됐다. 경쟁입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만큼 1차 입찰은 유찰된다. 방위사업청은 오는 18일 2차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입찰 준비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영업비밀 문제다. KDDX 기본설계 일부 자료가 경쟁사인 한화오션에 제공된 만큼, HD현대중공업으로서는 어떤 방식으로 제안서를 낼지 전략을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HD현대중공업은 지난 3월 24일 방사청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냈다. KDDX 기본설계 제안요청서(RFP) 배포 과정에서 핵심 설계 정보와 기술자료가 경쟁사에 공유되는 것을 막아 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 8일 이를 기각했다. 방사청이 이미 지난 3월 26일 해당 자료를 한화오션에 제공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공개나 제공을 금지하거나 자료 회수를 명령할 실익이 크지 않다고 본 것이다.
보안감점도 중요한 변수다. HD현대중공업은 과거 군사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아 올해 11월까지 1.8점의 보안감점을 적용받고 있다. 방사청은 추가 감점 1.2점을 적용할지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함정 사업은 평가 점수의 작은 차이로도 승패가 갈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보안감점 적용 여부가 이번 수주전의 핵심 변수라고 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현재 입찰 참여를 준비 중인 것은 맞다"며 "관련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KDDX 사업은 약 7조8000억원을 들여 6000톤급 구축함, 이른바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하는 대형 국책 사업이다. 선체와 전투체계 등을 국내 기술로 개발·건조하는 첫 국산 구축함 사업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아 왔다.
함정 건조사업은 보통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서로 진행되는데 KDDX 사업은 이중 기본설계까지 진행됐다.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이 2012년 개념설계를 맡았고,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수행해 2023년 완료했다.
국내 함정 사업에서는 그동안 사업 연속성과 책임 소재 등을 고려해 기본설계를 맡은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수의계약으로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이 변수가 됐다.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KDDX 관련 군사기밀을 탐지·수집·누설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가운데 8명은 2022년 11월, 나머지 1명은 2023년 12월 유죄가 확정됐다.
이후 두 회사의 입장은 갈렸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이어 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반면 한화오션은 공정성 확보를 위해 경쟁입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방사청은 경쟁입찰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본설계 자료 공유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됐다. 두 회사의 갈등이 길어지면서 당초 2024년으로 예정됐던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도 2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여기에 1차 입찰까지 유찰되면서 전체 사업 일정은 다시 늦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화오션은 KDDX 사업과 관련해 정해진 원칙과 일정에 맞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만약 2차 입찰에도 HD현대중공업이 참여하지 않으면, 국가계약법에 따라 한화오션과 수의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