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GPU(그래픽처리장치)를 넘어 CPU(중앙처리장치) 시장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국내 메모리 기업들과의 협력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AI(인공지능)용 GPU와 CPU에 탑재되는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대만에서 열린 행사 기간 한국 기업만을 위한 별도 네트워킹 행사인 '코리아 파트너 나이트'를 개최하며 AI 공급망에서 한국 기업들의 전략적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는 1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뮤직센터에서 열린 'GTC 타이베이 2026' 기조연설에서 "'베라'는 LPDDR(저전력 데이터더블레이트)5X 메모리를 사용하는 최초의 CPU"라며 "엔비디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CPU 제조업체 중 하나"라고 밝혔다. LPDDR5X는 현재 상용화된 가장 최신 세대의 저전력 D램이다. 올 하반기 고객사에 공급될 예정인 베라 CPU에는 LPDDR5X 기반의 '소캠2(SOCAMM2)' 모듈이 최대 8개 탑재된다.
엔비디아의 CPU 시장 진출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업계 최초로 소캠2 양산 출하를 시작했다. SK하이닉스도 한 달 뒤 양산에 돌입했다. 양사는 모두 엔비디아 베라 CPU에 최적화된 형태로 제품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그동안 HBM(고대역폭메모리) 공급을 통해 엔비디아와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엔비디아가 올해 하반기 출시할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는 HBM4 16개가 탑재될 것으로 전해졌다. 황 CEO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베라 루빈은 이미 완전 생산 단계에 들어갔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개된 영상에서는 베라 루빈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HBM4가 적용된다고 소개됐다. 업계에서는 AI 가속기에 이어 CPU까지 고성능 메모리 탑재가 확대되면서 관련 시장 규모도 한층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가 'AI 인프라 기업'으로의 전환을 본격화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전략적 가치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는 이날 저녁 타이베이 시내 한 해산물 전문 식당에서 삼성·현대차·SK·LG 등 국내 주요 기업 관계자들을 초청해 '코리아 파트너 나이트'를 개최했다. 황 CEO도 직접 참석해 만찬을 함께하며 협력 관계를 다졌다.
엔비디아가 대만 현지에서 한국 기업만을 위한 별도 행사를 마련한 것은 AI 공급망에서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평가된다. 일부 대만 현지 취재진 사이에서는 "왜 대만에서 열린 행사 기간 한국 기업만을 위한 별도 행사를 개최하느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이는 엔비디아가 한국 기업들을 AI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황 CEO는 이날 기조연설 도중 "땡큐 코리아(Thank you Korea)"를 외치며 한국 기업들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기조연설 과정에서는 현대차와 SK텔레콤 등 국내 기업들도 주요 협력 사례로 언급됐다.
황 CEO는 컴퓨텍스 2026 일정을 마친 뒤 한국을 방문해 주요 파트너사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황 CEO의 방한은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당시 황 CEO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킨과 맥주를 곁들인 이른바 '깐부 회동'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번 방한에서는 국내 주요 기업 경영진과 서울 성수동 한 식당에서 삼겹살과 소맥(소주+맥주)을 곁들인 만찬을 함께할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이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AI 인프라 기업으로 진화할수록 반도체와 자동차,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 필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며 "향후 협력 범위도 메모리를 넘어 AI 인프라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