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레미콘운송노동조합이 국가 핵심산업인 반도체공장 건설현장까지 협상 카드로 활용하며 수도권 총파업을 예고하자 레미콘 운송시장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에 관심이 쏠린다. 업계는 장기간 유지된 건설기계 수급조절제도가 레미콘 믹서트럭 운송사업자들의 협상력을 지나치게 키웠다고 지적했다.
1일 레미콘업계에 따르면 수도권 레미콘 운반비는 지난해 회전당 7만5730원으로 2009년 대비 150% 가까이 상승했다. 같은 기간 레미콘 가격상승률(약 77%)의 2배 수준이다. 건설업계 전반이 불황에 빠진 상황에도 운반비는 단 한 차례도 동결이나 인하가 되지 않고 상승세를 이어왔다.
레미콘산업은 제조와 운송이 분리된 구조다. 레미콘 제조사는 콘크리트를 생산하고 믹서트럭을 보유한 운송사업자들이 이를 건설현장으로 운반한다. 각각 개인사업자 지위지만 협상의 편의를 위해 권역별로 운송비를 협상, 결정한다.
올해도 전국레미콘운송노동조합이 오는 8일 수도권에서 총파업을 예고하며 운송비를 두고 제조사와 운송사업자가 충돌했다. 건설경기 침체로 레미콘 출하량이 IMF 외환위기 당시 수준 이하로 줄었지만 단가인상으로 물량손실을 메우려는 모습이다.
업계가 특히 올해 총파업 예고를 심각하게 보는 이유는 운송사업자들이 활용하는 협상 카드의 무게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특정지역 조업중단이나 재건축·재개발사업장이 주된 협상 카드였다면 올해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 등 국가 핵심 반도체 생산시설 건설현장까지 협상수단으로 활용한다.
실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현장에서는 토요일 4회전 운반을 조건으로 하루 150만원 수준의 비용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평상시 운송비와 주말 할증, 대기시간 등을 모두 감안해도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의 금액"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공기(工期)를 단축하기 위해 삼성물산이 공사현장에서 배치플랜트(Batch Plant·BP) 설치를 추진했으나 물거품이 된 사례도 있다. 배치플랜트는 공사현장이나 현장 인근에서 직접 레미콘을 생산·공급하는 설비다. 레미콘 운송사업자들이 일거리 감소를 이유로 반발해 설치가 무산됐다.
최근 타워크레인 노조가 똑같이 반도체공장 건설현장에서 총파업을 벌인 끝에 임금인상안을 이끌어내면서 협상의 긴장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SK하이닉스 용인캠퍼스 반도체공장 건설현장에 있는 민주·한국노총 타워크레인 노조원들은 파업을 통해 임금인상 목표를 달성하고 지난달 31일 파업을 종료했다. 앞서 전국을 들썩이게 만든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반도체공장 가동중단을 볼모로 협상력을 끌어올리자 반도체 건설현장으로 도미노 파업이 이어진 것이다.
레미콘업계에서는 18년째 유지되는 믹서트럭 수급조절제도가 지금의 운송비 갈등을 만든 근본원인이라고 본다. 정부는 2009년부터 건설기계 수급조절제도를 통해 신규 믹서트럭 증차를 제한해왔다. 당초 공급과잉을 막기 위한 제도였으나 장기간 유지되면서 신규진입을 어렵게 만들고 기존 운송사업자들의 협상력만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믹서트럭 수급조절제도는 내년 재논의를 앞뒀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건설경기 호황기에도 증차제한 완화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침체기에는 더욱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럼에도 레미콘업계는 지나치게 고착화한 시장구조와 매년 격화하는 운송비 갈등, 기사고령화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증차에 대한 전향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운송사업자의 운송비 협상 문제지만 결국엔 시장 자체를 손봐야 할 시점"이라며 "소수의 기득권이 시장을 독점하게 되면서 운반비 상승, 수천만 원의 번호판 거래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