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AI(인공지능)를 생산하는 AI 팩토리가 중요해질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28일 방영된 KBS 1TV '다큐 인사이트'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대규모 AI 산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당면 과제임을 강조한 것이다.
SK그룹은 이런 최 회장의 지론에 따라 AI 풀밸류체인(가치사슬) 확보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SK텔레콤은 AI 서비스, SK이노베이션은 전력 및 ESS(에너지저장장치) 등을 담당한다. 아마존웹서비스(AWS)·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와 손잡고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SK실트론 매각 건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SK그룹은 그동안 두산그룹과 진행해온 SK실트론 매각 협상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SK실트론은 반도체 칩 제조의 핵심 소재인 웨이퍼(반도체 칩을 만드는 얇은 원판)를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전문기업이다. 12인치 웨이퍼 기준 글로벌 시장점유율 3위에 올라있다.
SK실트론의 경우 2023년 이후 그룹의 화두로 '리밸런싱'이 부각되면서 매각이 추진돼왔다. 최 회장은 당시 '서든 데스(Sudden Death·돌연사)'까지 언급하며 그룹의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같은 해 최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이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직에 낙점된 후 리밸런싱은 본격화됐다.
방향은 명백했다. 비주력 자산을 처분해 재무구조를 튼튼히하고 미래 투자를 위한 동력을 회복하는데 방점이 찍혔다. 이 과정에서 2024년 219개에 달했던 SK그룹 계열사수는 최근 151개까지 줄어들었다. SK그룹이 최근 2년간 진행해온 자산 효율화 규모는 약 13조원 규모로 파악되고 있다.
SK실트론 매각은 사실상 마지막 리밸런싱 작업 중 하나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AI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이 도래하며 반도체 필수 소재를 만드는 SK실트론의 가치가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SK실트론이 팔릴 경우 반도체용 웨이퍼를 그룹 외부에서 가져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미래 생존을 위해 'AI 팩토리'를 표방하고 있는 최 회장과 SK그룹 입장에서는 반길 수 없는 셈이다.
SK그룹이 SK실트론 매각 백지화를 결정하면 사실상 '리밸런싱의 종료'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마지막 리밸런싱 대상 계열사를 AI 반도체 사업을 위해 품고 가는 모양새가 연출되기 때문이다. 향후 리밸런싱을 대신할 그룹의 화두로는 'AI 중심의 사업구조 재편'이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만 봐도 연간 수백조원대의 이익이 기대되는 상황 속에서 보다 공격적으로 AI 관련 투자를 진행할 수 있다.
오는 11~13일 진행되는 '뉴 이천포럼'이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매년 6~8월쯤 진행되던 경영전략회의와 이천포럼을 통합해 그룹의 AI 전략과 계열사간 시너지 확대 방안 등을 집중 논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이 'AI 속도전'을 주문할 경우 그룹의 화두는 '긴축'에서 '확장'으로 급전환될 수 있다. 포럼 결과에 따라 조직개편 및 사장단을 포함한 인사가 뒤따를 가능성도 높다.